국향과 서울 시향의 연주사|이대 대학원 박혜란씨의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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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의 교향 악단을 대상으로 그 역사와 연주 「프로그램」을 통한 「레퍼터리」 분석 등 새로운 연구를 이대 대학원의 박혜란씨가 석사 논문으로 냈다.
『국립 교향 악단과 서울 시립 교향 악단의 연주사』라는 제목의 이 이색적인 논문에서 보면 한국의 교향악 운동은 해방 전 연주자의 기술 부족·악기 부족의 초창기 단계에서부터 6·25이후 육군 관현악단과 해군 정훈 음악대 등 특수 형태의 교향 악단들이 밑거름 역할을 하여 1957년 이후 서울 시향과 KBS 교향 악단 (후에 국향)이 창설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는 것.
1956년9월에 창설된 방송 교향 악단 (상임 지휘 임원식)은 61년7월부터 KBS 교향 악단으로, 다시 69년1월부터 국립 교향 악단으로 명칭을 바꾸어왔고 서울 시립 교향 악단은 50년11월에 창단 된 해군 정훈 음악대를 모체로 1957년7월 김생려씨를 상임 지휘자로 출발했다.
따라서 이 두 악단은 비슷한 시기에 출발, 그 연주 경향이나 단원 편성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는데 초창기인 1960년대까지는 모두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 작품만을 다루어 곡목 선택이 한편으로 치우쳤다. 방송 교향 악단의 경우 56년∼59년의 19회 정기 공연 중 교향곡을 18회 연주했는데 「모차르트」 (4회), 「베토벤」 (3회), 「차이코프스키」 (3회)의 작품이 가장 많았으며 서울 시향도 57년∼61년의 26회 공연 중 21개의 고향곡을 연주했는데 「베토벤」 (8회), 「모차르트」「하이든」「브람스」 (각 2회씩) 등의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즉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면 비록 어려운 곡이라해도 연주하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베토벤」의 『운명』 과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등을 많이 연주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부터는 곡목 선택과 「프로그램」 구성이 비교적 짜임새를 찾기 시작, 교향 악단의 직업 의식이 뚜렷해진다. 외국서 연주 수업하고 돌아온 연주자들이 늘고 협주자·독창자들의 수준도 높아져 교향악 운동이 커다란 수준 향상을 한 시기다.
이 무렵 「브람스」의 작품 연주가 부쩍 늘어났고 전에 다루지 않던 「슈만」「드보르작」「베를리오즈」「시벨리우스」「프랑크」등의 교향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박혜란씨는 60년부터 69년까지를 한국 교향 악단 운동의 발전기로 풀이했다. 60년∼69년 KBS 교향 악단은 「스트라빈스키」「바르토크」「무소르그스키」등의 조곡들을 초연했으며 국내 작곡가들의 지휘로 연주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으며 서울 시향도 61년∼70년 10년간 71회의 정기 연주회를 하면서 「말러」「호바네스」「스트라빈스키」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했다. 특히 1966년엔 서울 시향이 10회의 정기 공연을 하여 활기를 보였다.
70년대로 들면서 비로소 한국의 교향악 운동이 안정을 찾아 단원 편성이나 「레퍼터리」선정이 자리를 잡게 됐다. 고전·낭만주의시대 작곡가와 「힌데미트」「브리튼」등의 현대작곡가들의 작품을 골고루 자유롭게 선택, 연주할 수 있고 교향곡 형식을 갖지 않은 현대 작품까지 거의 연주했다. 그러나 60년대 활발했던 한국 작곡가의 작품 연주는 70년대로 오면서 따로 「한국 작곡가의 밤」을 설정, 형식에만 치우치고 활동은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이 논문 연구자 박혜란씨는 이 두 교향 악단의 현재 공통된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지휘자를 많이 확보하는 길이라고 결론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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