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0) 제46화 세관야사(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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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밀수총책 원세개>
청국 원세개는 「주답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라는 직함과 감국대신의 임무를 맡고 1885년10월에 내한하여 1894년 귀국할 때까지 10여년간 한국에 군림했다.
그의 위세는 대단하여 한국정부대신은 물론 고종까지도 안중에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당시 외무아문고문 겸 내무협판 미국인 데니가 지적했던 바와 같이 그는 잠상인(밀수상인)이었고 청국 잠상인들의 후원자였다.
청국 거상들과 결탁하여 한국에 투자토록 조종한 그는 각 개항과 시장에 청국 상무관을 주재시켜 청 상인들의 상권확장을 적극 후원하는 한편 잠상인들의 밀수행위도 눈감아주고 옹호했다.
그 때문에 서울에 있던 원대인(원세개의 별칭) 처소에는 항상 청 상인들이 들끓었다.
당시 경인일대는 물론 황해·평안양도의 연안일대에서 청 상인들의 밀수가 성행하여 한국정부는 각 지방 관헌에 엄중 단속을 명하는 한편 원세개에게 여러차례 청상의 밀수행위 단속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원은 표면상으로는 협조하는 체 하면서도 한국관현이 밀수 청 상인을 잡으면 난폭하게 청인을 다루었다는 구실을 붙여 항의하고, 또 치외법권을 앞세워 밀수청인 처벌을 간섭했다.
따라서 밀수범이 잡혀도 대부분 청국에서 파견된 해관 당국자의 작용으로 세금만 물고 풀려났다.
청 상인들의 밀수행위는 조직적인 대규모의 것이었다. 많으면 정크 수십척으로 선대를 만들어 인천항, 의주방면 압록강과 평양방면 대동강연안일대에 출몰한 청 상인들은 한국관헌들이 접근하면 총기로 위협하고 야간에 강 한가운데 정박중인 정크에서 「낙배」라는 소주를 이용, 밀수품을 육지에 운반하여 청상점포에 숨겨두는 것이 예사였다.
만일 한국관헌이 밀수품 은닉혐의를 잡고 청상점포를 강제 수색하는 경우, 청국 주재관이나 원세개에게 알려 오히려 수색담당관의 처벌을 요구하는 등 후환이 많았다.
정크는 새까만 돛을 달고 장장 7백90km의 압록강상류 3백km지점 중강진까지 선단을 조직, 오르내렸었다.
원세개의 밀수행위는 합법을 가장한 것이 많았다.
그 예가 홍삼밀수. 한국정부는 당시 개성에 관삼포를 두고 홍삼을 만들어 청국 천진·상해 등지에 매년 10여만근씩 수출하고 있었다.
인삼수출은 정부의 허가사항으로 밀수검거자는 몰수원삼의 3할을 현물로 상주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원은 이 홍장, 또는 청국 정부요인들에게 선사한다는 명목으로 1년에도 몇차례씩 해관을 통해 검사도 받지않고 면세로 홍삼을 반출했다. 그 수량이 1년에 1만여근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1891년의 경우가 하나의 사례였다.
인천세관장에게 이런 지시가 떨어진 일이 있다.
『원세개가 배편으로 행리(소하물) 50여건을 보내는데 이중에는 왕이 하사한 홍삼 80근과 원 총리가 친지들에게 선사하는 각종토산물이 들어있다. 모두 검사를 거치지 않고 면세하도록 하라』는 요지였다.
세관원들은 누구도 감히 이 소하물을 손댈 수 없었는지라 그 행리속에는 얼마만큼 홍삼이 밀반출되었을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청인들의 또 다른 밀수행위는 이렇게 자행됐다.
한국정부는 1885년 청국과 전선조약을 맺은 청국전보국(화전국이라 했음)의 시공으로 인천∼서울∼의주에 이르는 육로전선을 가설한 일이 있다. 이때 화전국원의 행리는 전부 면세한다는 협정이 있었는데 이를 기화로 화전국원들은 공공연히 밀수행위를 자행했다. 화장품을 비롯한 외제품을 낙배에 싣고 들어오거나 홍삼을 밀반출하는 것을 우리 세관원들이 잡으러 들면 육혈포를 들이대고 위협했다.
화전총국의 총판 진모의 귀국길 밀수는 기록으로까지 남아있다. 진의 행리는 1백70여점이었다.
당시 총세무사(세관장) 모건은 고위층으로부터 이 행리 전부를 검사를 거치지 말고 통과해주도록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모건은 이같은 압력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상신했다.
『지시는 준수하는 것이 도리인줄 알겠으나 1백70여점의 행리 가운데는 진의 이삿짐 외에 홍삼이 들어 있으면 응당 수출세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지시를 이행하자니 해관은 직무를 다할 수 없고 밀수를 방지할 수도 없다. 지시공문은 인천세무사에게 이첩은 하겠으나 후일 사고가 생기면 총세무사가 공모 사기했다고 하지말기를 바란다.』
당시 청국 관원, 또는 화전국의 행리에 대하여 검사없이 통과시키라는 지시와 이 지시에 관계관들이 상신한 반대의견의 기록은 이외에도 수없이 남아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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