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교양을 위한 시리즈(9) - 연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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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음악이 우리 인간에게 꼭 따라야하는 것이라는 대전제는 아직 별다른 도전을 받지 않았지만 적어도 전통적으로 내려온 서양식 연주회에 대한 반기는 레퍼터리나 형식에 대해 요즘 구미 젊은층들 사이에 거세게 불고있는데요. 한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음악은 본래부터 공연예술이어서 연주회를 통해 음악을 듣지 않으면 안됐읍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면서 레코드·영화·TV·라디오방송이 생기면서 마치 요즘의 연극이 처한 위치와 같은 운명에서 음악자체의 감상·전달방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읍니다.
때문에 연주회에 대한 반발도 시대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봐야겠지요. 이미 구미에서는 이 연주회 자체가 많이 변모돼있어요. 피에르·블레즈 같은 사람은 연주회를 시작하기 전에 곡에 대한 해설을 먼저하고 연주를 하는 식으로 청중과의 새로운 호흡을 시도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서울에서만도 시즌만 되면 거의 매일 음악회가 열리지만 일반의 관심이 없으니 그것은 매일 있어도 사회현상으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 연주회가 일반의 무관심 속에서 관계전문가와 대학생·연주자친지들 속에만 행해지는가에 대해 한국의 음악계가 많은 반성을 해야겠지요. 무엇보다 현재 대부분의 연주회가 청중을 위하기보다는 연주자 중심이라는 인상을 없애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연주회라 하면 화석처럼 타입이 정해져있어요. 프로그램이 화려하게 만들어져있고 꼭 저녁7시(여름이면 7시30분)에 시작하고 시작에서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여 연주 중에 박수가 나오면 실례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따위의 아주 형식적인 것에 얽매여 있어요.
오늘을 사는 피곤한 사람들이 흐뭇하게 음악 속에서 즐길 분위기가 못되기 때문에 일반에게서 소외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레코드의 출현으로 우리가 음악을 즐기는 범위와 방법이 많이 달라졌지요?
『글쎄요, 레코드는 음악회를 파괴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더우기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한국음악인들이 외국레코드에 짓눌리고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레코드가 나옴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일부층만 즐겨오던 음악을 자기개인의 방안까지 들여놓아 대중화라는 숫적인 의미의 변화를 가져왔지요.
그러나 어느 연주자도 자신의 레코드에 혐오를 갖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자신을 죽여버린 것이라고 개탄하는 대가들도 있어요. 사람들이 음악을 즐긴다는 그 본질은 바로 감흥의 교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레코드는 일방적인 전달밖에 못합니다. 연주회는 청중의 감흥이 직접연주자에게 가기 때문에 그 음악은 그 시간·그 공간에만 존재한다는 값진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 셈이지요. 왜 세계최고 예술가의 레코드를 듣지 않고 음악회장을 찾는가가 여기에 그 뜻이 있읍니다.』
―「연주회」「음악」 이런 단어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서양고전음악을 주로 연상합니다. 그러나 록·페스티벌·대중가요와 같이 현재 많은 사람들이 쏠리는 분야를 음악의 테두리 속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과연 대중음악과 순수음악은 분류돼야 하는 것입니까.
『서양에서는 원래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으로 구분돼서 내려왔어요. 항상 세속음악이 교회음악에 영향을 주어 따라오도록 해왔지요. 그러나 작곡가들은 두쪽 다 써왔기 때문에 성격적으로는 달라도 그 형식은 같았어요.
문제는 대중음악·순수음악을 그 형식으로 나누는 것보다 좋은 음악이냐 나쁜 음악이냐를 나누는 데에 두어야겠지요. 그것은 음악이 바로 한 인간의 심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강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이나 미술에서는 외설이 문제되지만 음악은 그 구분이 밖에 드러나지 않아 그 심각성을 덜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음악만큼 외설적인 영향을 크게 가질 수가 없어요. 유행음악은 사회적인 현상으로 해석하여 그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음악은 자꾸 「사라져간다」는 표현으로 대변되듯 현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민요는 꾸준히 살아있고 판소리를 중심으로 조금씩 생기를 찾고있긴 합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우리의 전통음악이 외면당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 해방후 서양적인 가치관속에서 교육되고 생활하고있기 때문이겠지요. 현재 우리음악을 애호하는 층이 노인들이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소위 서양문명이 지배하는)현대감각에 안 맞는다는 것이겠지요. 즉 템포가 느리고 반복이 많다는 것인데요.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국인과 서양인의 가치관 차이에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빠르다」의 의미는 한국인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쁘다」고 해석하지만 서양에서는 「명랑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국인은 템포를 호흡에 기준하고 서양인은 동작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반복도 진취적인 서양인들은 전혀 이것이 무가치한 것이라고 하는 반면 한국사람들은 누구를 본뜬다는 것·반복한다는 것을 선으로 알고 지내왔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음악이 「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문화·음악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기계문명을 극복한다면 다시 살아있는 우리음악으로 사랑을 받게될 것입니다. <윤호미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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