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군에게 주는 글|정태동<연세대 정법대·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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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K군!
전일 군이 내 연구실을 찾아와 주고 간 마지막 질문이 어쩐지 내 머릿속에 여운이 있어 이렇게「펜」을 들었네. 『우리사회에 공헌하려면, 우리는 기능형의 인물이 되어야 하겠읍니까, 이념형의 인물이 되어야 하겠읍니까?』라는 군의 질문말일세.
물론 나는 서슴지 않고 두 가지 모두라고 대답했었네 만은,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좀더 군을 붙잡고 깊은 얘기를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네. 훈련이 끝나 휴가차 상경하면 다시 만나겠지만 우선 이렇게 몇 자 적어보네.
K군, 군도 알다시피 우리 사회가 분업화를 이루며 가속적인 발전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군이나 나나 이 사회가 요구하는 어느 분야에서 기능상의 사명을 다해야 할 줄 아네.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맡은 바 직분을 다 한다는 것은 지식인의 가장 숭고하고도 숙명적인 과제라고 보아야할 것이 아니겠나. 우리 사회를 하나의 우주선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우주선 건조에 필요한 수많은 부속품 중 어느 하나가 되어야할 책무를 느껴야 할 것일세.
그런데 군이 말하는 이념형의 인물에서 이념이란 말이 갖는 의미에는 어딘가 석연치 못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네. 「프란시스·베이컨」은 이념을 전통·권력·허위의 논리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정의했지만, 17세기이후 많은 사상가들이 정의하고 분석한 이념론은 오늘에 와서 상징과 신비에서조차 이념의 진의를 찾아보려는 노력에까지 발전한 것 같네.
여하튼 우리들의 일반적인 사고개념에서 이념하면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세계를 연상시키는 것 같네. 현실적이니 실용적이니 하는 말은 이념적이니「이데올로기」적이니 하는 말과 상반되는 말로 인식되는 것도 그러한 소치에서인 것 같네.
그러나 실상 이념이란 말을 깊이 음미해보면 그것은 순수한 이상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도리어 이 두 가지를 적당히 조화시켜 놓은 형태로서의 철학적 판단성이 있다고 느껴야 할 것 같네.
그렇기 때문에「프라그」교수도『끊임없이 이상을 현실화하는 진보적 인간』을 이념적 인간이라고 하고『개인이나 사회·국가가 발전하려면 이상과 현실의 조화로서의 확고한 이념의 성립이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겠나. 근면과 평등, 자유와 번영을 현실 속에 구현하면서 또한 그것을 이상으로 삼는 미국의 개척자 정신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숭고한 이념적 기조를 내포하고 있다고 믿어지네.
K군, 그러나 이러한 이념은 단순한 관념적 사고라고 할 수 있는「아이디어」와는 구분되어야할 줄 아네. 이념은 실천성을 강조하는가 하면「아이디어」는 실천성이 결여된 추상적인 이론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네.
K군!
우리는 결국 체득한 지식과 기술을 사회와 국가발전 속에 투입할 수 있는 기능형의 인물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네만, 그에 못지 않게 이념형의 인물도 되어야 할 줄 아네. 개인의 일상생활로부터 나라살림에 이르기까지 현실과 이상 그 어느 한 쪽에 지나치게 기울어져서는 안 될줄 아네. 현실을 파악하려는 태도에 의욕과 진실을 가져야 하며, 그 때에 비로소 군이나 내가 갖는 이상은 진보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념일수 있고, 이는 언젠가는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일세.
1975년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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