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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요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동양회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산수화를 보면 명산대천과 그 안에 점재해 있는 암자·초당과 어부·동자, 어단자·운수층 등 인물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흔히 인물을 화폭의 전면과 중심에「클로즈업」시키고, 자연을 다만 그 배경으로만 묘사하는 서양화와는 달리, 동양 산수화는 자연과 인간과의 일체성·융화성을 표현하는데 역점을 두고있는데 이는 동양인의 자연관·인생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양에선 산과 물이 자연의 2대 요소로 인정돼 왔으며, 산수가 곧 대자연을 의미했는데 이런 산수애호사상은 주로 도가사상·신불설·오행설에 의해 배양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정복·극복을 주장하는 서양인과는 달리, 동양 사람들은 자연에의 순응과 외경, 그리고 그것을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온 것이다.
공자의「인자낙산·지자낙수」란 말도 이 같은 동양인의 자연관과 삶의 철리를 교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인자가 아니더라도 산을 찾아 그 웅장한 품에 안겨 그 연기를 마셔가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지자가 아니더라도 강에 나가 말없는 흐름에 귀기울이며 유유자적하는 마음가짐을 익히는 것은 더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요즘엔 우리 주변에서 이 요산요수의 기풍의 멋과 풍유는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천박 저속한「향락」과 떠들썩한「풍악」놀이에 여념이 없는 행락객들만이 부쩍 늘어나 많은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음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주말이나 연휴에 단조로운 직장생활이나 번잡스럽고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도시인들이 산과 들과 강가를 찾아가는 것은 정신위생상으로 매우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가족끼리 또는 동창친목회나 계원들끼리의 야외놀이가 하나의 유행병처럼 되어, 과열된 이「레크리에이션·붐」「댄스·붐」대문에 휴일의 산과 들과 유원지 등이 혼잡과 소음과 풍기문란의「행락 공해장」으로 화한 것은 통탄할 일이다.
남녀가 뒤섞여 술을 마시고는 장구를 치고 꽹과리를 두들기며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거나 확성기로 고함치듯 외설적인 고성방가를 하고, 그리곤 만취되어 시비를 걸고 싸움을 하다간 아무 데나 쓰러져 뒹구는 추태가 예사처럼 되고만 요즘의 세상은 어느 모로나 한심스럽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어른들만이 아니라 청소년·학생들조차 떼지어「기타」를 치면서 기성을 지르고「라디오」나 전축에 맞춰「고고」를 추는 모습을 도처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행락객 가운데는 산의 나무를 꺾어 모닥불을 피우는가 하면 음식물 찌꺼기나 휴지·술병 등을 마구 깨어버려 산과 들과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오염돼 가고 있는 딱한 사정에 놓여 있다.
이런 탈선 행락과 자연훼손행위는 급기야 당국의 강력한 단속조치를 초래하게 하여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둔 듯도 하나 이런 타율적인 단속이 과연 지속적인 성과를 달성할지는 의문이라 하겠다.
단속도 필요하긴 하나 그 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민간단체에 의한 공중도덕의 계몽과 지도라고 하겠다. 예컨대 산악회·낚시회·청소년선도회·관광회 또는 어머니회 등이 산천경승지에서의 질서와 자연애를 설득 계도하는「캠페인」이 계속 돼야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놀이에 나가는 사람들 자신의 반성과 자숙이 아닐 수 없다.
명산대천에 대한 숭경심과 외경심을 갖고 낙산낙수의 심경으로 모처럼의 소풍이나 여행이 낭비나 향락이 아니라 유쾌하고도 생산적인 인생경험의 증폭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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