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지 실함 후 재평가되는 유럽인들의 동맹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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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남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미국이 앞으로 대외적인 책무를 맡는데 있어 보다 노숙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월남이 무참하게 쓰러진 직후 「키신저」가 첫 마디로 한 이와 같은 말은 「유럽」사람들에겐 『미국은 앞으로 누구를 위해서나 덮어놓고 지원의 우산을 들고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뜻으로 새겨진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키신저」발언을 옹색한 「패장의 변」으로 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또 오히려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그들이 「키신저」의 이와 같은 소회를 최근 그들이 미국의 대 동맹국 정책에 관련해 품어온 의구들을 적어도 어느 정도나마 덜어주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해석한 때문에서다. 의구란 일부에서 미국의 소위 새로운 고립주의화 가능성이나 지나친 내성화, 또는 종전과 같은 좀 분간을 잃은 동맹관 속에서의 혼미나 답보라는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이것이 다같이 경계돼야 할 일이라면, 미국의 대외책무에 보다 높은 「선택성」을 부여하겠다는 「키신저」의 시사는 지금 필시 「워싱턴」에서 진행되고 있을 정책 재조정작업의 옳은 방향을 가리켰다는 범위 안에선 긍정적으로 허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서방동맹체제의 재평가라는 논의에서 이곳 「업저버」들은 동서관계의 보다 높은 「선택화」나 「한정화」라는 것을 앞으로 미행정부가 취할 가능성으로 뿐만 아니라 동맹체제를 현재의 혼미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하나의 필요한 조건으로 강조해 오기도 했다. 말하자면 미국은 자신의 대외책무를 보다 일관성 있고 신빙성 높은 것으로 하기 위하여는 그런 책무이행의 목적·규모·방법·효율성보장 등을 한결 엄준한 기준 위에서 분명히 규정하고 그것을 당사국들에 충분히 이해시키는 과업을 게을리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거다.
그들의 이와 같은 판단은 인지반도에서의 미국정책 파탄의 큰 원인의 하나를 도시 미국과 그의 맹방 간 책무관계의 목적·규모·방법 등에 관해 분명한 결정이나 이해가 전무했거나 아주 미흡한데 있었다고 본다는데 바탕 한다.
예를 들어 「런던·타임스」가 최근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돌이켜보면 역대 월남정권하의 월남국민들이 과연 미국의 지원으로 제 자신을 구제하려는 통합된 의욕이나마 지녔던가 조차 분명히 확인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미·월 협력관계의 궁극적 파탄을 재촉하면 했지 그 성공을 약속하는 담보는 애초부터 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모호가 딴 이유와 겹쳐 미 국민들 사이에 『무엇을 위한, 언제까지의 출혈이냐』라는 회의를 북돋워주고 그것이 대내외적으로 미국의 도의적 권위마저 손상시켰다는 것은 간과하기 어려운 교훈이 돼야한다는 평이다.
또 월남 측으로서는 미군병력의 철수가 곧장 월남안보의 종언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그들 전의의 결정적 상실을 계기한 따위는 뚜렷이 한정되지 않는 책무나 상호기대 관계의 허구와 비현실성이 빚은 경험적 사례로 지적돼 오기도 했다.
따라서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미국이 베풀기로 결정하고 그의 맹방이 기대하는 미국의 「커미트먼트」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얼마만큼, 어떠한 방법으로 주어지는가?』가 현실의 바탕 위에서 확실히 규정되고, 또 수시 새롭게 확인돼야할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기준의 설정이라는 것이 경우마다 같다거나 수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관측통들은 어떤 기초적인 척도는 마련될 수 있고, 실제 앞으로의 미행정부가 이의 엄격한 적용을 시도할 것으로 믿고 있다.
예컨대 동맹국이 미국의 군사적 전략이나 경제적 이익보호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미국의 원조로 방위하려는 목적이나 가치는 서방세계의 도의적 지향과도 합치하는가. 그런 지향은 현 주민 대다수의 공감을 받고 있는가, 약속된 지원은 현실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가, 또 수원국은 원조의 효율성을 보장할 정치적·도의적, 그리고 자주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따위는 최소한의 기준을 이룰 것이라는 풀이다.
하긴 과거에도 이런 것이 전혀 고려밖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까지만 해도 그런 고려나, 그 일부는 흔히 이른바 자유세계의 방위라는 개괄적 명분이나 소위 「도미노」식 악몽에의 공포아래 순전히 군사적·전략적 고려에 우선의 자리를 물려줘 왔고 그것은 여러 경우에서 협력관계의 현실적 명분이나 효율성을 깨버리는 엉뚱한 결과를 빚어오기도 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월남사태 전후간에서 우선의 자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앞으로는 군사면 외의 고려들이 응분의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데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 「업저버」들은 보고있다.
순전히 군사적인 방위책무만을 놓고 본대도, 그것이 쌍무적이건 집단조약 속의 것이건, 미국이 제공할 원조의 한도나 형식은 전략적 「핵우산」의 제공으로부터 병력의 주둔 내지 개입, 그리고 단순한 병참지원까지, 계층화된 「스케일」결정이 될 것이고, 무한정성 지원이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욱 기대할 수 없고 기대하지도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사실 『세계 어디서나 자유의 방위를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하겠다』고 한 「케네디」식 약속은 월남으로서 그 문서상으로나마 유효기간을 끊었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다.
더우기 인지는 유명한 「도미노」이론의 본고장이었음을 곁들여 생각한다면 딴 이유를 차치해 놓고서도 미국의 책무 부담이 앞으로 더욱 선택화 되고 조건부의 것이 돼질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고도 남는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아무리 미국과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군사적 공동의 이해관계가 뿌리 깊은 서구인들 이에 예외일 수 없고 동맹관계의 재조정은 우선은 서로간 이런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런던=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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