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수술 145㎏ 빼 … 불가능하다던 임신도 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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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도비만 환자였던 뉴질랜드 여성 재스민 샤샤는 2011년 한국에서 위절제수술을 받은 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수술 전(왼쪽) 225㎏이었던 몸무게는 80㎏까지 줄었고, 임신에도 성공했다. 2005년 입양한 아들 크루즈(9)와 함께(오른쪽 사진). [사진 재스민 샤샤]

“이대로라면 서른 살을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2008년 3월 주치의의 진단은 스물여섯 여성인 내겐 너무 가혹했다. 나는 병상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부모님과 형제들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주치의는 “모든 신체 기능이 비정상이다. 사지마비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 이름은 재스민 샤샤(30). 지금 몸무게는 80㎏이지만 6년 전 이 무렵만 해도 키 1m76㎝에 225㎏의 초고도비만 환자였다. 지금 뉴질랜드 파머스노스에 산다. 나는 당뇨병·고혈압·심혈관질환을 오래 앓았다. 한 번에 8가지 약을 먹었고, 인슐린 주사는 최소 하루 세 번 맞았다. 호흡 보조장치의 도움을 받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입원 횟수와 기간도 점점 늘어 1년 중 합쳐 3개월을 입원한 해도 있었다. 어딘가에 상처가 났는데 빨리 발견하지 못하면 패혈증(세균 감염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악화됐다. 2010년 일을 그만뒀다. 어린이와 노약자를 돌보는 일을 했는데, 거동조차 힘든 내가 누굴 도울 처지가 아니었다.

 위장의 일부를 잘라 음식 섭취량을 줄여 살을 빼는 수술이 있다는 걸 그 무렵 알게 됐다. 3만7000 뉴질랜드달러(약 3300만원)라는 큰 비용이 우선 걸림돌이었다. 더 큰 문제는 수술을 맡겠다는 의사가 없었다. 수술 중 내가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수술을 기피한 것이다.

 2010년 한국에서 무료로 수술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뉴질랜드 지역신문에 소개된 나의 사연을 봤다고 했다. 한국의 우수한 의료기술을 해외에 알려 비만 환자를 많이 유치하기 위한 정부 프로젝트(한국관광공사)라고 했다. 한국이란 나라와 의료수준에 대해 당시까지만 해도 아는 게 없었다. 4개월간 망설인 끝에 2011년 2월 한국행을 결심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내 아기를 갖기 위해서다. 초고도비만은 배란에 문제가 있어 임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체중이 100㎏ 이하여야 그나마 가능하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클랜드로 가는 국내선을 예약할 때는 이코노미석 두 자리를 잡았다. 서울까지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다. 힘겨운 여정을 거쳐 마침내 서울 순천향대병원 김용진(외과) 교수가 집도하는 수술대에 누웠다.

 “적어도 나는 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은 다한 거야.” 위장의 80%를 잘라냈다. 과거에는 하루 8~9끼를 먹었는데 지금은 식사량이 10분의 1로 줄었지만 포만감을 느낀다. 지금은 당분이 많이 들어가거나 기름진 음식은 속에서 받지 않는다. 유산소 운동과 근육운동을 골고루 한다.

 수술 두 달 뒤 당뇨·고혈압 등 대부분의 병이 사라졌다. 거짓말 같았다. 호흡보조장치도, 한 움큼씩 먹던 약도 버렸다. 2012년 10월 몸무게가 100㎏까지 내려갔을 때 다시 한국을 찾았다. 팔과 배의 처진 살을 자르는 2차 수술을 받았다. 이코노미석 한 자리로도 충분했다. 정말 뿌듯했다.

 내가 이렇게 살이 찐 이유를 의사들도 설명하지 못한다. 뉴질랜드는 한국보다 비만에 관대하지만 여기에도 편견은 있다. 수술하기 전에 사람들은 나를 보면 수군거리고 손가락질도 했다. 학교에서는 ‘왕따’도 당했다. 체육시간엔 웃음거리가 됐다. 결국 열네 살 때 학교를 중퇴했다.

 수술한 뒤 가끔은 내가 유명인사(셀레브리티)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극적인 비만 탈출기가 현지에 제법 알려져 알아보는 사람도 꽤 있다. 예전엔 집 밖에 안 나갔는데, 지금은 반대다.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옛날 사진 속 내가 지금은 너무 낯설다. 세상에, 이게 나야?

 수술 후엔 난생처음 연애를 해봤다. 두 명의 남자와 사귀었다. 지난해 말엔 꿈이 이뤄졌다.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임신에 성공했다. 지금은 임신 6개월이다. 남편도 애인도 없지만 내 아이를 갖겠다던 꿈을 이뤘다. 6년 전만 해도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내 몸은 취약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당당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박현영 기자

※이 기사는 4~5일 뉴질랜드에 사는 재스민 샤샤(30)를 두 차례 2시간가량 전화로 인터뷰한 뒤 내러티브 리포트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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