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믿을 수 있는 맹방 인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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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놈, 나가라!』(양키·고·홈). 담벼락에 필경 「베트콩」이 써놓았을 이런 구호 밑에다가 우산 맥고모자를 쓴 월남인이 이렇게 덧붙여 써 놓고있다.-『나를 데리고!』「사이공」이 떨어질락 말락 할 무렵 「런던」의 한 일간지에 실렸던 시사만화다. 월남의 신세가 더 비참하게 그려지기도 어렵다. 미국만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처참한 끝이 된「아시아」의 약소국. 대저 이런 뜻으로 만화를 들여다보아 온 「유럽」사람들에게도 월남사태는 이제 그저 강 건너 일로만 보아 넘기기 어려운 어떤 불안을 안겨다 주고 있다. 그 밀짚 벙거지를 쓰고 있는 게 어떤 뜻에선 자기들일수도 있지 말란 법도 없잖으냐는 거다.
물론 서구를 월남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서구사람들 또한 그들의 안보를 위해서는 그 정도야 여하튼 아직도 미국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어야할 처지라는 데선 비슷하다는데 비롯한다. 게다가 월남이 소스라치게 던져온 한가지 질문은 『도대체 미국이란 어느 정도 믿고 살아야할 우방이냐』라는 거였다. 몇 가지 두드러진 사실만 놓고 본대도 이런 걱정이 엉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대국이라든가, 그를 중심한 동맹체제란 본디 어떤거냐란 것부터가 「유럽」사람들로 치면 예부터 그저 미더운 건 못돼왔다. 『대국엔 영원한 친구란 없다. 영원한 아침이라는 게 있을 뿐.』 영국「파머스턴」경이 남긴 이런 말은 아마 「유럽」사람들의 전통적인 동맹관을 이뤄왔대도 괜찮다.
실제 미국이 월남에서 그 동안 6만 명의 인명희생과 1천여억 「달러」의 투자라는, 그러니까 구두상의 만 번의 공약보다 더 값진 소위「커미트먼트」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발을 빼기로 했을 적에도 하나의 비극으로 보면 봤지 그걸 놓고 맹방에의 배반이라고 넋두리를 하고 나선 사람은「유럽」엔 많지 않았다. 많은 게 있었다면 그건 월남사태 시종의 뜻을 무엇보다 동맹관계의 본질에 대한「파머스턴」식 정의의 확인 과정이라는 줄거리여서 아주 냉소적으로 읽어왔다는 경향이었대도 터무니없을 건 없다.
미국이 그 동안 소위 서방세계의 방위라는 명분아래 인지에서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동안 서구 맹방 가운데 손 하나 까닥한 벗이란 하나도 없었다.
말로만의 격려조차 드물었다. 심지어 피를 흘려 도와줬던 월남의 「티우」조차 미국에 한바탕 욕지거리를 퍼붓고 떠났다. 떡 주고 뺨맞기다. 이렇게 벗들로부터도 버림받은 격이 된 미국이 이제 혼자 애쓰고 고맙다는 소리 못 듣는「국제 순경아저씨」노릇 좀 쉬어야겠다 한대도 무리일건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워터게이트」다, 월남이다, 요즘의 경기후퇴다 하는 엎치고 덮친 수난으로부터 좀 숨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쉬기를 원할 건 뻔하다고「유럽」사람들은 본다. 설혹 미 행정부가 그러지 않겠다 해도 의회와 국민들이 발목을 잡는다.
73년 미 의회가 소위 「전쟁집행권에 관한 법률」(War Powers Act) 이라는 것을 통과시켜 미 행정부의 대외군사행동의 발목을 묶었었다는 것은「반란적」인 의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하나의 사례로 이곳 사람들의 기억에 박혀 남아있다. 얼마 전 미국 시민들에 대한 「해리스」여론조사 결과 또한 그렇다. 만약 소련군이 서구에 쳐들어왔다 해도 미국이 이에 실력으로 대항해야한다고 한 대답은 39%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국이「아메리카」라는 요새 속으로 몸을 피해 바깥 세상에 고립주의라 할 대문 빗장을 영영 잠가버리리라고 심각히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적·경제적·전략적으로 서구와 이러한 미국의 이해란 그러기엔 너무도 큰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30년 동안처럼 정치·경제·군사, 그리고 도의 면에서도 자신의 압도적인 우위를 확신하는 미국이 서방세계 어디서나 또 누구에게나「무차별」하게 후견의「우산」을 받쳐들고 나서던 소위「2차대전시대」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월남이 쓰러지던 날 이곳 「데일리·메일」지가 사설의 한 귀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런 「안보의 황금시대」는 이제 끝장을 보게 됐다.
오늘날 미국의 물질적·정신적 상황에 비춰봐도 그걸 하나의 수사로 돌려버리긴 어려운 일이다.
「유럽」사람들이 그것을 무슨 홍백간 승부의 차원에서 인식하느냐하면 그건 별개의 문제다. 그보다는 하나의 현실이나 변화로 친다. 변화란 언제나 그 나름대로의 긴장과 불안을 몰고 오게 마련이다.
결국 「유럽」사람들은 이제 동맹국으로서의 미국의 「커미트먼트」의 신빙성을 던져야할 때가 왔다면 질문의 설정은 당연히『그게 덮어놓고 믿을만한 것이냐, 아니냐』이기보다는 『어떠한 조건아래서만 믿을 수 있을만한 것이 될 수 있느냐』라는 한정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런던=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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