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식 M&A는 '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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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사업 다각화와 시너지 효과를 위한 기업들의 인수.합병(M&A)에 대해 최근 투자자들의 시각이 냉정해졌다.

과거 M&A를 한다는 얘기만으로도 호재가 돼 주가에 힘이 실리던 상황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투자자들은 특히 인수대상 기업의 재무구조가 나쁠 경우 '사업다악(惡)화'라며 주가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회사 측의 인수 계획을 무산시키기도 한다.

지난 18일 웅진그룹이 보험업 진출을 위해 쌍용화재를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쌍용화재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으나 웅진코웨이는 5% 가까이 하락했다.

시장의 반응이 이처럼 싸늘하자 웅진 측은 18일 오후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존중해 쌍용화재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고 이튿날 주가는 반전됐다. 웅진코웨이는 10% 급등한 반면 쌍용화재는 5% 가량 떨어진 것이다.

쌍용화재는 이달 초 지난해 4월부터 올 1월까지의 누적 손실액이 74억원이라고 밝힌 데다 지난해 미국계 회사와의 매각 협상이 관계회사인 한일생명의 부실 문제로 결렬된 상태였다.

웅진의 쌍용화재 인수 계획이 투자자들에게서 환영받지 못할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LCD부품업체 금호전기도 모니터업체 이미지퀘스트를 인수하려다 시장에서 혼쭐이 난 뒤 포기했다.

금호전기는 지난 12일 4백20억원에 이미지퀘스트를 인수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순이익률이 1% 미만인 이미지퀘스트의 지분을 현금으로 매입하기로 한 것이 회사의 재무상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며 주가가 이틀 연속 가격제한폭까지 추락했다.

결국 금호 측이 계약을 취소키로 하면서 금호전기의 주가는 반등했으나 계약 취소가 확정된 지난 17일 이미지퀘스트는 하한가로 주저앉았다.

동양제과는 스포츠토토 지분 인수설 이후 주가가 침체 일로를 겪고 있다. 체육복표 사업 진출을 결정하기 전만 해도 동양제과는 제과업의 꾸준한 성장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의 흑자 전환 예상으로 주가가 6만원대에 근접해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스포츠토토 주식 2백50만주를 매입하며 최대주주기 되기로 계약했다는 공시가 나온 뒤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지난 17일 3만9천원대까지 밀렸다.

스포츠토토 인수 비용(약 3백50억원)이 동양제과의 재무구조에 부담을 주는 데다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M&A에 대한 이 같은 시장의 반응에 대해,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해 가던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공중분해되는 과정을 지켜본 투자자들의 학습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이 사업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것보다 핵심 역량에 집중하기를 원하는 심리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의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불확실한 증시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무리한 사업 다각화를 꾀하다 퇴출된 업체들의 교훈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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