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 최후의 목격자|한국인 74명 「괌」 도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중앙일보는 5일 월남 철수 한국인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는 「괌」도 「아가나」시에 「로스앤젤레스」 주재 특파원 김건진 기자<사진>를 특파했다. 다음은 김 특파원의 제1신.
월남 최후의 날 「사이공」을 극적으로 탈출한 한국인 74명(확인된 사람) 은 기아와 폭서 속에서 남지나해의 거센 풍랑을 뚫고 6일만의 긴 항해 끝에 「필리핀」의 「수빅」만에 도착했다가 비행기편으로 5일 「괌」도에 도착, 급조된 수용소에 입소했다.
지난달 30일 「사이공」 함락 5시간 전 월남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5일 이곳 「아가나」의 월남 철수 난민 수용소에 도착, 악몽의 여정 6일을 씻고 첫밤을 지낸 것이다.

<폭서·기아의 6일>
피난민의 물결로 급조된 「텐트·빌리지」에서 하룻밤을 보낸 한국인 난민들은 1백28여 시간의 긴 항해로 몹시 피곤해 보였으나 우선 전화에서 벗어난 안도감 때문인지 오랜만에 이들 사이에 미소가 보였고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월남을 철수한 한국인 제1진 14명은 5일 상오6시 도착했고 이어 60명이 도착, 6개 「캠프」에 분산 수용되었는데 「괌」 주재 영사관은 인원과 신원을 파악 중이라고 밝히고 이 보다 더 많은 난민이 도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후의 한국인은 「사이공」의 미 대사관 뒤뜰 정원수를 자르고 급히 만들어진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30일 상오4시 「헬리콥터」를 탐으로써 철수에 성공했다.
김영관 주월 대사 등 공관 직원들은 「사이공」이 함락되기 전날인 29일 상오 10시 미 대사관으로부터 즉시 철수할 것을 연락 받고 집결지 미군 「아파트」로 달려갔으나 「아파트」 경비병이 지시를 받지 못했다고 문을 열어 주지 않아 김 대사를 비롯한 이들은 할 수 없이 다시 제2집결지인 미 대사관 「게이트」 25로 뛰어야 했다. 미 대사관 주변은 탈출하려는 인파로 들끓어 철수 난민이 들어설 틈도 없을 만큼 탈출자들이 숲을 이루었다.

<집결지에 못 들어가>
김 대사와 이상훈 참사관은 대사관 본관으로 들어가 보니 해군 연락 장교 이문학 해군 중령(38) 등이 이곳에서 철수 「헬」기를 기다렸다.
미 해병대 경비병들은 개미떼처럼 밀려 닥친 월남인과 외국인들에게 질서를 잡기 위해 공포를 쏘아 댔다.
이 틈바구니에서도 이 중령 일행은 침착히 「헬」기를 기다렸고 「게이트」 25에 들어서지 못한 한국인 40여 명이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탈출의 길을 찾으려고 아우성쳤다.

<공포쯤엔 막무가내>
이들이 김 대사의 주선으로 미 대사관 안으로 들어온 후 30일 상오4시쯤 미 「치누크」 「헬」기가 닿아 미 대사관에서 철수가 시작됐다.
질서 있는 철수가 있을 수 없다. 저마다 먼저 타려고 아수라장을 이루었고 이따금 미 해병대 경비병들이 공포를 쏘며 질서 유지에 안간힘을 썼으나 막무가내며 미 대사관 뒤뜰은 혼란 그것이었다.
이 중령은 자신이 어떻게 「헬」기 안에 들어와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필사의 탈출에 몸부림치는 인파에 저절로 밀려 「헬」기를 탄 자신을 발견했다고 그는 말했다.
VIP들은 미 대사관 옥상에 마련된 「헬리포트」에서, 기타는 미 대사관 뒤뜰 급조 「헬리포트」에서 「치누크」 「헬」기로 「사이공」을 탈출했다.
이 중령 등은 「붕타우」를 거쳐 1시간10분만에 미 수송선 「덴버」호 갑판에 닿았다.
즉시 미 해군 용역 수송선 SA「밀러」호에 옮겨진 이들은 미 수송기 C-141기에 갈아타 5일 상오6시 「괌」도 「앤더슨」 미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최후의 철수진」외에 다른 한국인 피난민은 따로 미 함정편으로 5일 하오 「아가나」시 남쪽 8㎞지점 미 해군기지 「텐트·빌리지」(천막촌)에 도착했다.
이들 한국인 난민들은 여섯 군데 JNG「캠프」에 분산 수용, 「사이공」 탈출 6일만에 다리를 쭉 뻗고 하룻밤을 잔 것이다.

<괌도, 한국인 우대>
「괌」도 주재 김기준 영사는 「아가나」시의 수용소는 냉방 시설과 의료 시설이 잘 돼 있으며 식사도 좋은 편이라 한국인들은 모두 건강하며 수용 소장인 「아가나」의 미 해군 사령관 「모리슨」 소장과 협조가 잘돼 한국인들은 월남인과 달리 외출도 자유롭고 대우가 좋다고 말했다.
김 영사는 앞으로 한국인이 얼마나 더 올지 현재 미 연방 피난민 대책 본부로부터 사전 연락을 받지 못해 알 수 없으나 금주 말까지는 미 수송선편으로 한국인들이 도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영사는 자비 귀국 희망자·제3국 취업자 등에게 필요한 서류를 발급, 조속히 수용소를 떠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아가나」에는 JNG「캠프」와 우리 영사관 남서쪽 2.4㎞지점에 ASAN「캠프」등 2개의 난민 수용소가 있다.
두 「캠프」는 전기·목욕 시설이 잘돼 있고 이 중령 등 일행 14명이 수용된 JNG「캠프」는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단층 「퀀시트」 5동. 이곳 JNG에는 월남인 4백여 명도 수용돼 있다.
이들보다 앞서 미 함정으로 도착한 한국인은 ASAN「캠프」에 들었다.
ASAN 「캠프」는 월남전이 치열할 때 미 군부 장병을 수용한 미 해군 임시 야전 병원으로 모두 16동의 2층 「퀀시트」건물.
수용 피난민들은 식사와 취침에 지장이 없게 수용 즉시 식기·모포·「매트리스」를 지급 받았다.
「아가나」 천막촌에 「달러」만 있으면 맥주를 제외한 모든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피·엑스」가 잽싸게 개점됐다. 물건값이 너무 비싸 피난민들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월남 난민 미국 수송 책임자 「모리스」 소장은 지금까지 약 5만 명의 월남 피난민이 「괌」도에 수용되었다고 밝혔다.
「모리스」 소장은 그중 2만여 명이 미국으로 공수되었다고 말하고 또 1만5천명의 난민을 싣고 있는 3척의 미군함이 7일중 이곳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