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소년 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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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의 조치훈 6단이 지난 1일 일본 「프로」 10걸전의 결승 5번기에서 가등 8단을 「스트레이트」 3연방으로 물리치고 제1위의「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이는 조치훈6단 한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열망하던 영광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조치훈 6단은 이미 일본 기계에서 여러 가지 기록을 깨 왔다. 11세에 초단이 된 그는 최연소 입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종전 기록은 임해봉 9단의 12세였다. 그뿐 아니라 초단에서 6단의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최단 승단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비록 연초에 판전 9단에게 분패는 했지만 「타이틀」 도전자로서는 최연소 기록을 세운바 있었다.
이제 그는 「프로」 10걸전에서 우승하여 최연소 「타이틀」 보지자의 기록을 세우게 된 것이다. 종전까지는 석전 9단이 가지고 있는 21세였다.
일본 기사들이 해마다 다투는 「타이틀」은 큰 것·작은 것 합치면 10가지나 된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이번에 조치훈군이 획득한 「타이틀」은 「본인방」과 「명인」에 다음가는 권위 있는 3대 「타이틀」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임해봉·석전 9단과의 활기찬 3파전이 앞으로 기대될 뿐만 아니라 조치훈군의 독무대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일본의 기계에서 내다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바둑의 세계는 특히 천재성이 일찍 발휘된다. 더군다나 정석과 권위의 굴레에서 손쉽게 벗어나게 된 전후부터는 바둑의 세계에 있어서의 세대 교체는 눈부시게 빨라졌다. 그것은 일본이나 한국에 있어서나 다를 바 없다. 전전의 일본 기계를 주름잡던 오청원이 천재성을 아낌없이 발휘했던 것도 19세부터였다.
그렇다고 정상에 이르는 길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조치훈군도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재롱을 피웠을 6세의 어린 나이에 도일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한줄기 바둑의 세계에 묻혀 피눈물나는 수업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타이틀」을 딴 직후에 바둑 한알 한알이 모두 어머니의 얼굴로 보였다고 울먹이며 말한 그의 소감은 우리의 가슴을 다시없이 뭉클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조군의 경우를 통해 여러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바둑의 세계뿐 아니라 적어도 세계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노력 없이는 결실이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이 그 하나다.
이번에 조군에게 진 가등 8단은 기력에 있어 결코 뒤진다고 올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둑에 있어는 기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기백이자 인간이다. 지난번 일본 기원 선수권전에서 판전에게 분패했던 것도 결국은 인간의 싸움에 눌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도 바둑의 세계에만 한정되는 얘기는 아니다.
이것이 또 하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조군은 한국의 소년들이 어느 곳에서 뭣을 하든 충분히 자랑스러운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셈이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에게는 조치훈군이 다시없이 고마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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