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2)<제45화>상해임시정부(27)|조경한(제자 조경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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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더기로 감금된 독립군에 대한 오씨 사령부의 군사재판은 내가 감금된 지 사흘만에 정식으로 개정됐다.
군법정에 호출되어 나가보니 지청천 장군과 첫날 감방에 같이 갇혀있던 오종수란 자가 먼저 나와 있었다.
재판관은 주변에 하정세(구국군 제11여단장), 부심에 전인성(동 10여단장) 구세필(동 9여단장)이었고 통역관에는 한국인이 어머니인 당시 14사단장의 부관이었던 지영민이 맡았다.
재판은 나에 대한 인정심문으로 시작됐다.
문=귀 군대에서 일본군과 상통이 있었다는데 사실인가.
답=사실 유무는 묻는 재판장이 더 잘 알 것이다. 평소 왜적과 싸울 때 당신네 중국군대보다 우리가 앞장서서 피투성이로 용진하던 것을 항상 당신네들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 않았소. 구태여 억지로라도 옭아매려면 차라리 『왜적도 역시 인간생명인데 그 생명을 무참히 도살하는 것은 인류애에 배치된 행위』라고 해서 뒤집어씌우시오. 사가살부가욕(옳은 선비는 혹시 죽이는 경우가 있더라도 억울한 죄명과 잔인한 언동으로 모욕하지 못한다) 이라는 당신들 나라의 옛말이 있듯이 우리를 죽이려면 깨끗이 죽이지 일본군과 내통했다는 등의 억울한 죄명은 덮어씌우지 마시오.
문=당신들 한국독립군의 투쟁경력과 진심을 왜 모르겠소. 다만 당신네 군대를 친일군대라고 고변한 사람이 있어 오사령의 분부대로 심문할 뿐이요.
나의 답변태도가 하도 거칠었는지 곁에 있던 지 장군이 손끝으로 내 등을 치면서 『좀 고정하시오, 이것도 명색이 군법정이 아니오』라고 은근히 나의 행동을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침착한 태도와 꿋꿋한 진술에 재판관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고는 곧 오종수에 대한 심문으로 넘어갔다.
문=당신이 제출한 고발장을 보면 지난8월7일 독립군 총사령부에서 왜군총사령부에 기밀문서를 길명삼이라는 사람을 시켜 전달케 했는데 길이란 자가 당신과 이웃에 사는 절친한 사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답=사실이다. 길이 나에게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기에 너무 격분해서 고발했다.
문=지금 길은 어디에 있는가. 당시 그 기밀서류를 보았는가.
답=길은 당시 내가 가지 말도록 만류했으나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가버린 후 아직 소식이 없다. 문서는 내가 보자고 간청했으나 끝내 길이 보여주지 않았다.
문=절친한 사이라면서 그러한 중대사실을 통정한 자가 서류를 안보여 줬다는 것은 전후가 모순된 얘기 아닌가.
답=서류를 못 본 것은 사실이다.
문=당신이 그 사실을 알고 크게 분개한 것은 대의 때문인가, 아니면 독립군과의 어떤 사감에 의한 것인가.
답=나는 사감은커녕 오히려 독립군과 친했다. 다만 대의를 위하여 그 같은 얘기를 듣자마자 고발한 것이다.
문=대의를 위했다면 기밀서류를 갖고 갈 때 미리 막을 수도 있지 않았는가.
답=….
오종수가 말문이 막혀 고개를 푹 수그리자 재판장은 재차 가시 돋친 심문을 계속했다.
문=사실을 알고 크게 격분했다면 시각을 지체 말고 즉각 고발했어야 했을 텐데 어찌하여 8월7일에 안 사건을 2개월이 지난 10월10일에야 고발했는가.
답=독립군의 색다른 동태를 보고하려고….
문=그래 무슨 색다른 동태라도 알아냈는가.
답=글쎄 별다른….
오가 또다시 말문이 막혀 얼버무리자 재판관은 오에 대한 심문을 중지하고 다시 나에게 물었다.
문=당신은 고발인 오씨와 그가 말한 길명삼이란 사람을 알고 있는가.
답=길명삼이란 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오종수도 최근에야 소개를 받아 내왕을 했소.
문=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알았는가.
답=7월 「윙씨릥」(옹서령) 전쟁이 끝난 후 전장청소 때 차량 밑에서 구출하여 그 뒤로부터 알고 지내게 됐다.
문=그밖에 오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은.
답=당자의 말과 지방민들의 말을 들어 대강 짐작하고 있을 정도다. 오는 원래 이 지방 부농가로서 공산분자의 위협에 항상 공포에 떠는 생활을 하다가 왜적이 와서 주둔한 후로는 그들에게 의존해 잠시 안도하다가 왜군이 퇴각하게 되니 생명의 위협을 면키 어려워 수레에 가산을 몽땅 싣고 왜군의 뒤를 따라가다가 마침 전쟁의 틈바구니에 끼이게 되자 차량 밑에 숨어 생명을 겨우 부지, 우리 독립군의 구출로 다시 옛집에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 독립군의 보호로 아무 공포 없이 지나게 되니 독립군에 고마운 마음을 두고 있었으나 최근 공산분자들이 다시 대두할 기세가 보이자 마음이 동요되던 차에 아마 공산군의 마수가 뻗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재판관 앞에서 오와 대화를 나둬 그의 정체를 밝히려 하는데 허가해 줄 수 있는가.
답=물론 한번 해 보라.
드디어 나는 오와 대질대답을 하게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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