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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이 만든 '아이폰 차' … "1억원 넘는데 2만 대 팔린 건 기적"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한 민간 연구소. 동행한 연구원은 “지난번 부탁드린 대로 사진 촬영은 어렵다. 연구소 이름도 노출하기 부담스럽다”고 강조했다. 정문에서 5분 정도 걸어가는 동안 신분 확인을 두 차례 받아야 했다. 실내 농구장과 비슷한 크기의 조립식 건물이 연구소였다. 미래 전기자동차에 가장 가까운 모델로 불리는 ‘테슬라(Tesla) 모델 S’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주인공인 엘런 머스크(42)가 개발한 이 차량은 1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전기차다. 한 번 충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릴 수 있다. 국내에서 상용되는 전기자동차는 한 번 충전으로 서울에서 세종시 거리(135㎞) 정도를 간다. 테슬라는 현재 이 연구소와 현대자동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총 4대만이 수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구입해 선박으로 들여왔다. 수작업으로 두 달간 분해했다. 이날 만난 연구원은 십자드라이버로 부품에 달린 나사를 하나하나 풀고 디지털카메라로 세밀히 촬영했다. 그는 “현재 부품 해체 단계에 불과하다”며 “각 부품은 전문 연구기관으로 보내져 보다 정밀한 분석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직선 코스 1㎞에 달하는 주행 성능 시험에서도 테슬라는 연구원들을 놀라게 했다. 한 연구원은 “시속 200㎞까지 가능한 데다 빠른 속도에서도 코너를 안정감 있게 돌았다”며 “배터리 배선기술은 기존 자동차업체보다 좋다”고 말했다. 운전석에는 에어컨 조작부나 라디오 버튼이 모두 없어지고 아이패드 두 배만 한 태블릿PC가 들어왔다. 다른 연구책임자는 “자동차에 대한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차량이 나왔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기술자 사이에서도 테슬라의 기술력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구대현 한국전기연구원 전동력연구센터장은 “자석으로 만든 모터와 달리 값싸면서도 기술력이 필요한 유도기(誘導機)를 사용했다”며 “국내에서 이만한 모터를 만들려면 기술 개발에 2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 말 이 차량을 2대 수입해 남양연구소에서 정밀분석에 들어갔다. 업체 관계자는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배터리 효율을 높이는 전기차 고유의 특성을 잘 살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1억원 이상 고가 차량은 수요가 많지 않다”며 “2만 대 이상 팔린 기록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테슬라에 대한 관심은 신드롬 수준이다. 미국에서 2012년 6월 출시된 테슬라 모델 S는 현재 2만5000대 넘게 팔렸다. 지난해 유럽과 일본 시장에 진출했고, 올해부터 중국에도 판매될 예정이다. 2010년 6월 20달러에 불과했던 테슬라 주가는 최근 200달러까지 뛰었다. 지난해에는 자동차업계에서 수여하는 상을 모조리 휩쓸었다. 미국 비영리기관 소비자연합이 만든 잡지 ‘컨슈머리포트’조차 테슬라 모델 S에 100점 만점 중 99점을 줬다. 1936년 창간 이래 가장 높은 점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5초밖에 걸리지 않는 가속으로 페라리나 포르셰 못지않은 성능을 보이기도 한다. 테슬라를 소개한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조회 수 198만 건을 기록했다.

 ‘테슬라 신드롬’은 20~30대 아이폰 세대부터 시작됐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의 아이폰에 열광하던 젊은 소비층이 이번에는 태블릿PC와 결합한 전기자동차에 몰렸다. 테슬라는 태블릿PC로 대부분 기능을 조작할 수 있어 ‘아이폰 자동차’로 불린다. 신드롬에는 영화 ‘아이언맨’과 같은 엘런 머스크의 인생도 한몫했다. 20대에 인터넷 결제시스템 페이팔을 만들어 억만장자가 된 그는 로켓 발사 회사와 전기자동차 회사를 각각 차렸다. 지난해 시속 1200㎞까지 달릴 수 있는 진공터널 기차와 20년 내 화성 식민지 건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이폰 세대에서 미국이나 일본 매장에서 차량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인증샷’을 인터넷에 올리는 게 유행처럼 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한인 자동차 블로거 피터 박(27)씨가 인터넷에 올린 테슬라 시승기는 네티즌 ‘성지(聖地) 순례’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5월에 올린 시승기는 10만 명이 조회하고 댓글 300여 개가 달렸다.

 박씨는 “테슬라가 아이폰의 판매전략과 같은 마케팅 기법을 활용한다”고 강조했다. 테슬라는 애플스토어를 성공시킨 애플 임원 조지 블랭케십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애플스토어는 사람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져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직원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테슬라 매장에서도 전기자동차 기술을 직접 배우고 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테슬라 차량 주문은 한국의 안방에서도 가능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을 선택해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 미국의 매장에 차가 나오는 방식이다. 지난달 25일 직접 주문을 시도해 보니 카키색부터 빨간색까지 9가지 색상을 선택한 뒤 내부 가죽의 질감까지 직접 고를 수 있었다. 최대 시속 200㎞까지 낼 수 있는 고급 기능을 선택하니 가격이 13만370달러(약 1억4000만원)로 나왔다. 물론 결제는 못했다.

 특히 전기자동차의 미래를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엘런 머스크가 주도하고 있는 점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전기자동차 생산은 엔진과 변속기 같은 복잡한 부품이 없어 기존 자동차업체가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상대적으로 작다.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창출해 노키아가 몰락한 것처럼 테슬라가 전체 자동차 시장 구도를 바꿀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제주대 이개명(전기공학) 교수는 “예상치 못한 외국 업체가 국내 시장도 선점할 수 있다”며 “국내 대기업의 투자도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에 반해 무서운 속도로 대비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9월 세계 최초로 열릴 전기차 경주 ‘포뮬러E’를 베이징에 유치했다. 주식의 귀재 워런 버핏이 투자한 회사로 알려진 중국 자동차 회사 비야디(比亞迪·BYD)는 영국 런던에 전기차 택시를 수출할 예정이다. KAIST 온라인전기차사업단 서인수 교수는 “2017년부터 중국에서 자동차 공장을 운영하려면 전체 생산량 중 7~8%는 전기자동차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불과 3년밖에 남지 않은 거대 시장에 대비하는 회사는 중국 내 기업밖에 없다”고 말했다.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예측에 반신반의하는 전문가도 있다. 세계전기자동차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한양대 선우명호(자동차공학) 교수는 “고급 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층에 맞춰 판매전략을 세우기 때문에 현대·기아차 같은 회사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KAIST 김종훈(전자공학) 교수도 “기술을 표준화하는 단계에서 테슬라와 같은 신생 업체가 주도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업계가 더 적극적으로 전기차 개발과 확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민간 전기자동차업체 관계자는 “환경부에서 지자체에 지원금을 주면서 충전소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한국도로공사와는 협의가 안 돼 고속도로 휴게소에 충전소가 세워지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전기차 산업 모델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은 “세금은 기획재정부, 보급과 규제는 국토교통부, 표준화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각각 맡고 있어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청와대나 총리실에서 주도적으로 전기차 사업을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전기차로 서울 주행해 보니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공영 주차장에서 전기자동차 차량을 직접 대여해 운전해 봤다. 스마트폰을 차량 앞문에 대니 “띠리릭” 전자음과 함께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풀렸다. 남산 3호 터널은 혼잡통행요금을 내지 않고 통과했다. 한남대교는 시속 60㎞로 빠져나왔다. 액셀을 밟는 대로 속속 속도가 나왔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히터를 32도로 맞춰 틀었다.

 이 전기차는 완전 충전하면 80㎞ 거리를 달린다. 하지만 한남대교를 지나니 계기판에서 남은 거리가 69㎞로 갑자기 떨어졌다. 당황해 대여업체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히터를 틀면 전기를 많이 먹어 급속하게 주행거리가 줄어든다. 바람을 약하게 하고 엉덩이에 나오는 열선을 이용하라”고 일렀다. 불안한 마음에 히터도 열선도 모두 꺼 버렸다.

 상담원에게 “분당까지 가겠다”고 하니 “동절기 때는 장담하기 어렵다. 중간에 급속 충전소를 이용하라”고 말했다. 전기차를 경기도 안성까지 끌고 갔다가 충전소가 없어 수원까지 견인해 왔다는 인터넷 댓글이 머리를 스쳤다. 오후 4시 무사히 태평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계기판을 보니 전기는 절반 이상 남았다. 요금은 6시간 사용에 3만7800원.

 지난해 4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 대여업체는 현재 서울지역 56곳에서 120대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 번거로운 점이 많지만 탑승 후 만족감은 타기 전보다 높아졌다. 주유비를 감안하면 일반 렌터카보다 값이 비싸지 않았다. 주차관리원은 “가족 단위로 전기차를 빌려 가는 모습을 종종 봤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현재 120대인 차량을 올해 80~90대 더 늘릴 예정이다. 서울시와 환경부에서 차 값 4500만원 중 3000만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서울시 지원금액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업체 관계자는 “지원금은 줄지만 수요가 늘어 4년 뒤부터 흑자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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