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오물 넘쳐났던 프랑스 … 넝마산업 융성한 멕시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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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카트린 드 실기 지음
이은진·조은미 옮김
따비, 351쪽, 1만8000원

쓰레기의 사전적 정의는 못 쓰게 돼 내다버린(릴) 물건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알맹이만 먹고 내다 버린 사과 껍질은 쓰레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못 쓴다’의 기준이 때때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 모호한 기준 사이에서 인류는 쓰레기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살아왔다. 이 중 무엇이 되느냐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쓰레기 이야기니까.

 공공쓰레기처리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는 쓰레기가 만들어 낸 역사의 뒤안길을 조명한다. 수많은 고증과 조사를 거친 이야기를 물 흐르듯 풀어낸 결과, 별 관심 없던 쓰레기가 실은 인류 문명의 또 다른 주연이었다는 퍼즐이 맞춰진다.

 예를 들어, 파리 왕정시대 사람들은 쓰레기와 함께 살았다. 창문 열고 온갖 오물을 길에 투척했다. 이게 얼마나 자연스러웠으면 “밤 산책에 나섰던 루이 11세는 어느 대학생이 던진 요강 물을 머리에 맞았지만, 죄인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학생을 격려하고자 금일봉을 내렸다”고 할 정도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전염병이 돌면서 국면은 전환된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계급 투쟁도 벌어진다. 부자들은 쓰레기를 멀리하고, 쓰레기처리장은 저항이 적은 가난한 이들의 삶 옆에 자리하게 된다. 19세기 말 파리·뉴욕 등에선 쓰레기를 줍고 사는 넝마주이가 활개친다. 쓰레기에 따라 가격이 매겨졌고, 넝마주이의 소소한 활동은 재활용 산업으로 커갔다. 책에선 1980년대 멕시코에는 2만 명의 넝마주이를 부리는 쓰레기 중개업자 라파엘 기테레즈 모레노의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암살당한 그에겐 15명의 첩과 100여 명의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쓰레기에도 가능성은 있다. ‘못 쓴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서면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해진다. 인도의 비정부기구 ‘컨서브’는 뉴델리 넝마주이가 모아온 비닐봉지를 고압으로 압축한 소재로 핸드백을 만든다. 인도의 유명한 디자이너 난디타 샤우니크가 디자인한 이 가방은 유럽의 고급 부티크에서 팔린다.

 쓰레기는 예술가들에겐 ‘뮤즈’가 되기도 한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쓰레기의 이미지를 전복시킬 때 오는 스릴감이 크다.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거리에 놔두면 쓰레기에 불과할 남자 소변기를 갤러리 안에 거꾸로 놓고 ‘샘’이라고 이름 붙인 건 유명한 얘기다. 그 순간 쓰레기는 작품이 됐다.

 쓰레기의 필연성·독성·가능성을 모두 들여다 본 저자도 쓰레기에 대한 해법을 명쾌하게 내리긴 어려운 모양이다. 글의 결론에서 함께 생각해 보자며 권하는 말이 이렇다. “과연 인간의 재능과 상상력으로 쓰레기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과연 인류는 지구를 훼손하는 이 현대의 역병을 극복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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