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터키軍, 이라크 북부지역 독자 진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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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끼어들면서 전황과 정세가 한층 복잡해졌다. 터키의 정규군이 이라크 북부지역으로 진군한 것이다.

AP통신과 BBC방송 등은 터키 군 특수부대원 1천여명이 장갑차 등을 타고 21일 밤(현지시간) 이라크 국경을 넘었다고 22일 보도했다.

터키 압둘라 굴 외무장관은 이날 외신기자에게 "군이 M-113 병력수송 장갑차를 동원해 터키와 이라크 국경지대인 쿠쿠르카 인근 지역을 거쳐 이라크 쪽으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굴 장관은 "전쟁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홍수처럼 밀려오는 것을 막고 이라크 북부에 권력 공백 상태가 될 경우 생겨날 테러 활동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는 이날 터키가 일방적으로 벌인 일이며 사전에 이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 터키군의 이라크 영내 진입을 사실상 시인했다.

하지만 터키군 참모총장은 즉각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터키 아나톨리아 통신이 보도했다.

외신들은 터키가 이라크 국경에서 7km 가량 떨어진 실로피 지역 등 이라크 인접 지역에 수천명의 군인을 대기시켜 놓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앞서 투입된 1천여명은 선발대에 불과하고 곧 탱크와 대포로 무장한 5천명 가량이 국경을 넘을 전망이라는 보도도 있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은 터키의 움직임을 이라크 북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인의 독립 움직임을 사전에 막고, 이 지역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터키로서는 쿠르드인이 이라크 전쟁을 틈타 독립국가를 건설하면 자국의 최대 소수민족인 쿠르드인도 이에 가세해 커다란 동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공격작전을 준비하면서 쿠르드인의 협조를 끌어내려고 애썼다. 따라서 미.영은 터키의 행동이 이러한 전쟁 전략을 방해하고 쿠르드인과의 마찰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쿠르드인 3천만명은 이라크.이란.터키.시리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각지에서 독립국가 수립을 추진해 왔다.

특히 터키에서는 1984년부터 분리 독립 운동을 벌여 수만명이 희생되고 수십만명이 국경 밖으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쿠르드인들은 화학무기로 자신들의 동포 수천명을 학살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보다 터키군에 대한 반감이 더 커 조만간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BBC방송은 전망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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