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속의 생지옥…월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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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남 제2의 대도시며 북부 지역 최대의 군사 기지인 「다낭」이 공산군에 함락된 최후의 날인 29일 「다낭」 시내는 약탈과 동족 살륙의 생지옥을 연출했으며 몰려든 피난민들로 아비규환의 수라장을 이루었다. <사이공=외신 종합>

<수단 방법 안 가리고>
28일 밤부터 29일 새벽에 걸쳐 공산군의 총 공격 전주곡으로 일제 포격이 가해지는 가운데 날이 새고 시 주변에서 격전이 벌어지자 공항에는 수만명의 피난민이 몰려들어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다낭」의 공항으로 밀어닥친 필사적인 난민 군중 속에선 오직 재빠르고 힘세고 가장 비겁한 수단을 지닌 자만이 최후의 난민 수송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난민들은 기상에 오르려고 아귀다툼하다가 밟혀 죽었고 7명은 바퀴 상자 속에 들어갔으며 간신히 기체에 매달렸던 사람들도 수백m의 고공에서 비행기의 기대를 움켜쥐었던 손의 힘이 빠지자 해상으로 떨어져 낙엽처럼 사라졌다.

<해상 수송 작전 무위>
「다낭」시 함락 최후의 날인 29일 피난민 공수 작전은 비행기의 부족과 피난민의 폭동으로 실패로 돌아갔으며 해상 수송 작전도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 국제 개발처 (AID)는 한번에 1천7백명을 철수시킬 수 있는 「점보·제트」 수송기들을 마련할 계획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월드·에어웨이즈」 항공 사장 전용기「보잉」 727 항공기 1대 밖에 활용하지 못했다.
이 항공기가 착륙하자마자 수만명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처참한 광경을 이루었으며 일부만을 태우고 수많은 난민들을 남겨놓은 채 떠나고 말았다.

<50여명이 밟혀 죽어>
「사이공」으로 피난 온 익명을 요구하는 한 「프랑스」인은 피난 비행기에 몰려든 인파 속에 항공 기계 단위에서 밟혀 죽은 사람은 약 50명이나 되며 그 중에는 손에 어린이를 안고 임신까지한 부인도 끼여있었다고 말했다.
피난 비행기에 채 타지 못한 군복 차림의 한 월남군 대위는 군복을 갈기갈기 찢고 적에 가담하겠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피난민 후송 작전을 담당했던 한 미국 수송기 조종사는 월남군 병사까지 서로 비행기를 타려고 자기들끼리 총격전을 벌였다고 전했다.
또 4백명의 정부군이 민간인들을 제쳐놓고 비행기에 올랐다고 말했다.

<먼저 타려 총격전도>
이 수송기에 타지 못한 정부군 낙오병들은 비행기를 향해 발포했으며 수류탄 1발이 주익 밑에서 폭발했다. 조종사는 멀리서 「로키트」 포성이 다가오는 가운데 수송기를 급히 이륙시켰는데 「리엔·후옹」 UPI 사진 기자는 기체에 매달렸던 난민이 고공에서 남지나 해상으로 추락하는 참경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비행기는 「다낭」 공항에서 한 정부군 병사가 던진 수류탄으로 한쪽 날개가 완전히 날아가 버렸고 바퀴를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초만원이었다.
조종사는 민간인 피난민들을 태우려고 민간인들이 몰린 곳으로 비행기를 끌고 가려했으나 어느 곳에나 군인들이 몰려들어 난장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몇몇 군인들은 기관총과 권총을 쏘아댔으나 비행기에는 총알 구멍이 뚫리지 않았으며 일부는 무기를 내던진 채, 그리고 일부는 수류탄과 기타 무기를 가진 채 비행기로 뛰어들어 왔다.

<정부군 수만명 투항>
월남 정부는 29일 「다낭」시에서 8명의 범법자를 현장에서 총살했다고 발표했으나 정부의 이 같은 강경책도 무법천지화한 질서를 회복하지 못했다.
「베트콩」 성명은 「다낭」 시내에 갇혔던 수만명의 월남 정부군은 무기를 버리고 「베트콩」에 투항했다고 주장했다.

<이틀동안 물 못 먹어>
한편 5백명의 굶주리고 목마른 피난민들로 초만원을 이룬 후송 선이 이날 「다낭」으로부터 「사이공」에 도착했다.
상처투성이인 7백t급 연안 화물선인 「칸·호이」호는 정부에 징발되어 갑판이 빈틈 하나 없이 빽빽히 피난민을 싣고 왔는데 3일간의 항해중 물과 식량이 떨어져 일부 피난민들은 이틀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피난민들은 또 보통 30「피아스타」하던 쌀 한되에 5백 「피아스타」를 더 얹어줘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공산군에 자기 고향을 잃고 갖은 고생 끝에 낮선 「사이공」항으로 탈출해온 후 또다시 정처 없이 배로 떠나면서도 안도나 슬픔의 빛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들이었다.

<사이공도 최대 불안>
「다낭」 함락이란 비보가 전해진 30일의 「사이공」 표정은 적어도 겉으로는 조용했다.
이날이 부활절이라는 사실 외에 「사이공」 시내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고 공포나 불안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공산군의 남하가 계속되는 한 이곳에도 미구에 전쟁의 공포가 밀어닥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은 시민들의 표정을 굳게 만들고 있었다.
국민학교 어린이들을 포함한 약 5천명의 「사이공」시민들은 29일 「사이공」시내에서 월맹과 「베트콩」의 무력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월남 국기를 흔들며 월맹과 「베트콩」의 「파리」 협정 위반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쳤으며 미국이 월남에 적절한 전투수단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인간의 비극이라고>
「포드」 미국 대통령은 30일 월남 제2의 도시 「다낭」시의 실함은 『엄청난 인간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포드」 대통령은 「다낭」시의 실함으로 수십만명의 월남 피난민들이 갇히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이는 모든 인류에게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포드」 대통령은 「다낭」시의 실함에도 불구하고 「다낭」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피난민들의 철수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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