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잘 피살로 또 하나의 벽|미 중동 외교의 딜레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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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맙소사, 하필 이런 때 그런 비극이….』「파이잘」 암살 소식에 「워싱턴」의 한 관리가 탄식을 했다 『하필 이런 때』란 「키신저」의 중·동 외교가 완전 실패로 돌아가고 전쟁 재발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키신저」가 「이스라엘」을 떠나면서 자기의 단계적 해빙 방식이 실패한 것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앞으로의 사태의 심각성을 의미한다.
「키신저」가 중동을 떠나자 「이집트」는 지금까지 「시리아」의 경계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키신저」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단독 협상을 통하여 「시나이」 사막의 유전과 전략로들의 회복을 위한 흥정을 시도하다가 이를 포기하고 강경파 「시리아」와의 공동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래서 「이집트」는 「아랍」 정상 회담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이집트」의 독자 노선으로 지연되었던 「이집트」「시리아」「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PLO)의 통합 사령부 설치가 급속한 진전을 볼 것으로 보인다.
그런 「아랍」측의 움직임은 마땅히 「이스라엘」을 자극하여 「키신저」를 통한 협상을 주도한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 「알론」 외상의 온건파 세력이 밀리고 「페레스」국방상 중심의 강경파의 발언권이 「이스라엘」을 끌고 갈 가능성이 커진다.
「아랍」·「이스라엘」의 태도가 이렇게 급선회하면 5월중에 소집될 것 같은「제네바」회담은 끝없는 논전으로 일관하고 7월에는 중동 상공이 다시 전운으로 뒤덮일까 「워싱턴」은 걱정이다.
「포드」 대통령이 「키신저」 외교의 실패를 보고 중동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도 직접으로는 「이스라엘」의 비타협적인 태도에 대한 반발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전쟁 재발을 예방할 수 있는가의 결론을 얻기 위한 것이다.
「포드」 대통령은 「라빈」「이스라엘」 수상에게 태도를 보다 신축성 있게 가지라고 촉구하는 친서까지 보낸바 있다.
그 친서에서 「포드」 대통령은 이번 외교가 실패하면 미국은 부득이 중동 정책을 재검토한다고 경고까지 했다.
미국의 중동 정책의 재검토라면 우선 「이스라엘」 몫의 원조 삭감을 들 수 있다.
당장 4월만 되면 중동의 「무장 평화」에는 시련이 닥친다.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이스라엘」 완충 지대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군의 대권이 그때 만료된다.
「키신저」의 견해로는 「유엔」군의 대권은 연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가 지금 선뜻 응할지는 의문이다.
응한다면 까다로운 조건을 붙일 것이다.
「시리아」는 이미 5월에 만료되는 「시리아」-「이스라엘」 완충 지대의 「유엔」군의 대권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키신저」 국무장관은 26일 기자 회견에서 앞으로 남은 조치는 「제네바」 중동 평화 회담의 소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개별적인 협상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밝혔다.
중동 평화 협상은 원점으로 복귀한 것이다. 개별적인 막후 절충 없이 열리는 「제네바」회담은 입씨름의 무대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키신저」 국무장관은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는데 「파이잘」「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영향력 행사에 기대를 걸었었다.
「파이잘」왕은 5억의 「모슬렘」의 정신적 지도자였고 OPEC (석유 수출국 기구)를 움직인 세계 정치의 강자, 그리고 중동 전에서는 「아랍」전비의 많은 부분을 부담하는 「중동의 미국인」, 소련의 중동 진출을 불안하게 보는 친 서방 반공주의자로 73년 석유 무기화를 주도한 사람이기는 해도 미국과는 밀착돼 있다.
그는 7억5천만 「달러」어치의 미국 전투기를 수입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키신저」는 「파이잘」을 중동의 「안정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키신저」 외교의 실패에 뒤따라 일어난 「파이잘」 암살은 그래서 「키신저」와 미국 정부에는 충격적이었다.
「할리드」 신왕이 「파이잘」의 친 서방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기대하는 「키신저」도 「파이잘」의 개인적 권위가 아쉽다고 기자 회견에서 실토했다.
「할리드」가 「파이잘」만큼 「아랍」 세계에서의 지도력과 영향력을 가질지가 의문이고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인도차이나」 정세 악화로 「키신저」의 위신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그의 사임설도 그 때문에 나돌았다.
그러나 「포드」 통령은 키신저」가 물러나기를 원해도 그를 놓아 줄 형편이 아니고 야심 많은 「키신저」도 인기가 최악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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