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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로마시대의 도로, 빅데이터시대의 법·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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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정관영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서양사를 한마디로 함축하는 문장이다. 국가의 영향력은 수준 높은 문화·콘텐트의 힘과 비례하고, 문화의 전파력은 이를 퍼뜨릴 수 있는 인프라와 상관관계가 깊다.

 오늘날 로마의 도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웹’과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인프라다. 웹은 정보의 개방화와 수평적인 정보 접근성을 이끌어 전 세계의 다양한 콘텐트가 교류하는 장을 마련해줬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이름처럼 구름 저 너머에 있는 방대한 정보와 정보기술(IT) 자원을 언제든 빌려 쓸 수 있게 해 각종 IT기기의 용량상의 제약을 사라지게 했다.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도 빼놓을 수 없는 인프라다.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들이 사람의 도움 없이 센서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로, 센서·배터리 기술이 발달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기술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게 바로 ‘빅데이터’다. IoT를 통해 수집된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처리해 의미 있는 정보로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은 빅데이터가 유일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도 나타났듯이 앞으로 IT 세계는 IoT·클라우드·빅데이터라는 삼각축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빅데이터는 기업의 수익을 증가시키고,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빅데이터가 집적화된 ‘개인정보’일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대란에서처럼 개인정보의 오남용과 허술한 보안의식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인 빅데이터 사업의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고, 개인정보 보호와 병행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도 개인정보에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한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애매하다. 빅데이터를 활용할 때 개인정보의 범위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업이라면 이런 법률 리스크가 있는 시장에 선뜻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빅데이터를 발전시키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그간 빅데이터 산업의 진흥과 개인정보 보호의 병행이 왜 어려웠는지 원인부터 생각해보는 게 순서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삶에 가져다줄 편의성에만 몰두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이것이 우리에게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온 형국이다. 빅데이터 산업의 진흥과 개인정보 보호의 병행은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체계적이고 분명한 법·제도의 정비가 선결돼야 한다. 로마의 도로가 훗날 이민족들이 침략해 오는 통로가 된 것처럼 어설픈 법·제도는 되레 후유증만 양산하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정관영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