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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드」 왕궁의 총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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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역사상의 전기는 우발적인 돌발 사고로 마련되는 수가 많다. 「사라 예보」에 울려 퍼진 한발의 총성이 1차 세계 대전을 유발 했듯이 「리야드」 왕궁에서 벌어진 궁정 살해극은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 새로운 불씨를 던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국왕은 「사라젠」 제국의 역대 제왕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자신의 근친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것이다.
재위 13년을 통해 사막의 부족 사회들을 근대 국가의 모습으로 통합·발전시키고, 보수적 「아랍」 민족주의와 회교 신앙의 수호자로서 중동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또 하나의 거인이 사라진 셈이다.
거인의 퇴장은 반드시 과도적 혼란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 동안 「파이잘」왕과 「사다트」 대통령의 화해로 「아랍」 세계엔 일종의 중도적 통합 노선이 구축됐었다.
이들의 중도 노선은 대「이스라엘」정책이나 석유 외교에 있어 「아랍」 급진파와 소련의 압력을 배제하는 일종의 안전판 구실을 해왔었다.
이 안전판이 「페르샤」만에 있어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보호했고 선진 공업국들에 대해서는 보다 온건한 석유 정책을 전개할 수 있게 했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성지「예루살렘」만 돌려주면 「키신저」의 단계적 평화 안을 지지할 수 있다는 자세였다. 대내적으로는 중도파인 「이집트」, 왕제파인 「요르단」·「이란」 등과 제휴하여 급진파의 혁명 노선을 견제하면서 그 대안으로 「군주 제하의 근대화」를 추구했다. 때문에 「파이잘」왕의 서거는 중도 노선의 항해와 새로운 급진주의 대두의 발단이 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왕의 죽음과 시기를 같이해 중동 분쟁의 해결 방안이 「팔레스타인·게릴라」를 포함하는 급진파와 소련에 의해 새로이 제시 될 형편이며, 「요르단」의 「후세인」왕까지도 소련 특사의 계략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아랍」 보수 진영과 서방측에 대한 도전 요소들은 비단 소련이나 급진파들만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내부에서 착실하게 성장해 온 근대적 군부야말로 앞으로의 이 지역 정정에 가장 미묘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헌법도 없고 의회도 없는 사막의 유목 사회 안에서 유독 초현대적인 무기 조작술과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는 군부 「엘리트」들은 이 나라의 잠재적인 「나세르」주의자들로 간주되고 있다. 만약 이 세력이 「할리드」 신왕과 「파드」공의 약체 정권에 도전하여 제2의 「카다피」나, 「나세르」를 지향할 경우엔 중동의 전략적 균형은 결정적으로 무너지고 미·소의 개입이 불가피하게 뒤따를 것이다.
현재 「페르샤」만 일대와 「소말리아」에는 소련의 기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군사력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인도양 진출은 아직 충분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이며 제4위의 「달러」 보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향방이야말로 전세계의 전략적·경제적 풍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랍」 세계의 정치사에는 거인의 출현을 축으로 해서 단합과 분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파이잘」왕의 급서는 「아랍」의 풍운을 또다시 분열과 전화의 악순환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 「키신저」의 처방이 외면 당하고 다변 협상에 의한 평화의 구조가 채 짜여지기도 전에 「아랍」의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것은 중동 평화 협상의 공전을 예고하는 사태다. 이 불안한 진공기를 메우기에는 「사다트」도 「카다피」도 충분한 대역은 될 수 없다.
단지 바람직한 것은 강대국 미·소의 절충과 조정에 의한 전란의 방지와 포괄적인 평화 구조의 수립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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