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인지를 포기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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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크메르」에 이어 월남이 공산군의 대공세에 직면, 9개 성도를 포기하는 극적인 열세에 몰리게되자 미국 내 일부 관측통들은 미국이 3년 전에 이미 「인도차이나」를 포기하지 않았나 하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키신저」가 73년1월에 마련한 평화협정은 평화 협정이기보다는 미국의 철수 협정이라고 부르는 편이 옳다는 것이다.
그 협정은 미국이 명예롭게 후퇴하는 시간을 보장받는 약속이었을 뿐이며 이제 공산 측은 그들이 미군 철수를 기다려 주기로 양해한 2년의 기한이 지남으로써 월남·「크메르」의 공산화를 위한 마지막 정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의회에 대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사 전문가 「라로크」 전 해군 제독의 표현을 빌면 강대국 「데탕트」는 「파리」 협정 체결 당시의 「인도차이나」의 현상을 동결시키는 약속 같은 것은 그 내용 속에 포함시키지 않고 오히려 미국의 후퇴를 꼴사납지 않게 하는데 중·소가 협력하기로 한 약속을 담고 있다. 「라로크」는 미국이 「인도차이나」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증거로 「키신저」가 지금 중동에서 맴돌고 있는 사실을 지적했다.
의회 쪽의 태도야 어떻든 「포드」 행정부가 「티우」「론·놀」 정권을 구제하는 노력이라도 해 볼 의사가 있다면 「키신저」는 지금 월맹 협상 대표 「레·둑·토」를 만나고 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국무성 대변인은 20일 「브리핑」 때 월남 정세를 가리켜 그것은 『그들의 전쟁』이라고 표현했고 21일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관한 국제 회의를 소집할 의사가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말했다
이들 두 대변인의 말은 「인도차이나」 정세에 대한 미국 정부의 현실적 입장을 반영한다.
설사 행정부가 월남·「크메르」를 구제할 의사 정도는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회 쪽은 요지 부동이다.
94대 의회는 반전 「데모」를 하던 젊은이들이 많이 진출해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행정부의 외교 정책 결정권을 대거 탈취했다. 그래서 이미 「포드」가 요청한 월남·「크메르」를 위한 추가 원조 5억2천2백만「달러」는 「포드」가 설정한 날짜를 넘기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의회는 지금 7월까지는 「인도차이나」에 대한 모든 군원을 완전히 중지하는 법안을 준비중이다.
이런 판에 행정부가 인지에 대한 추가 군원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침몰하는 배」에 뛰어 오르자는 주장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포드」와 「키신저」는 요즘 갑자기 「도미노」 이론을 들고 나왔다. 월남·「크메르」가 공산화하면 태국·「말레이지아」가 위태롭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미국의 국제적인 신의가 땅에 떨어진다는 걱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포드」나 「키신저」가 정말로 그러한 연쇄 반응을 예상하고 있지는 않다고 해석한다.
미국에 관한한 이제 남은 문제는 행정부는 의회에, 의회는 행정부에 「인도차이나」 상실의 책임을 떠맡기는 역사적인 논쟁뿐이다. 50년대 초반에 누가 중국 대륙의 공산화의 책임을 질 것인가를 가지고 일대 논쟁을 벌인 「매카디」 선풍의 축소판이 예상된다.
「키신저」가 「아스완」에서 월남·「크메르」 때문에 중동 평화 협상에 지장이 있다고 짐짓 불평을 한 것도 이 같은 책임 전가의 포석일 뿐이다.
「티우」 대통령이 월맹 및 「베트콩」과의 묵계 아래 북부의 성들을 포기했다는 억측을 「워싱턴」에서 믿지 않는다.
군사적으로 결정적인 우위를 잡고 있는 공산 측이 「티우」를 상대로 그 같은 야합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이공」까지 함락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크메르」의 운명은 한층 빨리 결딴이 날 것으로 전망들을 한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론·놀」 정권을 구제하는 데에 있지 않고 「크메르·루지」의 어느 파가 실권을 장악하며 「시아누크」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인도차이나」 포기가 현실 적응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은 애당초 잘못된 결정이라는 전제위에서 「키신저」는 미국이 그다지 흉하지 않은 모습으로 「인도차이나」를 떠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하는데 성공한 것이 바로 「파리」협정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라로크」 제독 같은 사람은 월남 「크메르」가 공산화하면 미국은 한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방위 가능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고 한국의 경제력은 앞으로 4, 5년 안에 한국의 자위 능력을 기를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미국은 한국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 측의 주장처럼 「인도차이나」가 공산화되면 「도미노」 이론이 한국에 적용될 것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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