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한 주요 지역 3일내 점령을 목표"|북괴서 귀순한 유대윤 소위·김부성과 일문일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동부와 서부의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김부성씨(소좌급 대우)와 유대윤 소위가 21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순동기와 경위는.
▲김=67년 12월 20일 북괴노동당 중앙위원회 연락 부와 소환을 받고 개성에 있는 육상 안내원 훈련소에서 훈련받던 때부터 남한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때 남한에서 9년 동안이나 생활했던 고원이 강의를 통해 남한에는 북한과 같이 강제규율 각종 조직 등의 통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74년 7월15일 개성인민병원에 전립선염으로 입원 중 조총련 오오사까 지부장 유지원의 아들 유성실이라는 자로부터 일제시계를 사기 위해 노트·담배·수첩·소설책 및 돈 6백원을 줬으나 이자는 내가 갖고 있던 김일성 초상 휘장을 또 요구, 휘장을 시계와 바꾸려 했다고 모함했다.
그는 내가 남한에 고속도로를 굉장히 건설하고 그 주변에도 고층건물을 수많이 건설한 것으로 말한 것으로 전했고 서울에 경기장 2개가 있는 것을 말했는데 굉장히 큰 체육관을 건설했다고 선전하더라고 고자질했으며 남한 TV에서 세계 미인대회를 방영한 것을 들었다고 말하자 이자는 내가 남한에서 나체 춤을 많이 추고 있는데 그것이 좋다고 말하더라고 보고한 것이다.
나는 비판을 받도록 결의됐기 때문에 이기간 동안인 74년 9월 4일 상오 7시 30분쯤 출발하여 모친과 처자식 마저 버리고 그날 밤을 이용, 비무장 지대를 넘어 9월 5일 상오 6시 25분쯤에 국군초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유=64년 입대이래 11년 동안 전방부대에 근무하며 라디오를 통해 남한의 노래·만담 등 흥겨운 프로를 몰래 들으며 남한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68년 철원군 회산리에 주재하던 북괴군 안 전원이 대한민국으로 귀순했고 69년 초에는 북괴군 25사단 민경소대장이 또 귀순한 사실을 방송에서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북괴에 대한 회의와 불만을 갖게 돼 근무성적도 떨어지게 됐고 74년 8월에 실시된 만능 병사판정 검열에서는 무능소대장이란 낙인이 찍혀 숙청을 면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 월남할 것을 결심했다.
74년 9월 소대원 l명을 데리고 머루·다래를 판다는 핑계로 비무장지대를 5번이나 허가 없이 드나든 사실이 발각됐고 지난 l월12일 군단사령관과 군단작전부장이 땅굴공사를 시찰하러 왔을 때 내가 호위 안내를 담당하게 돼 땅굴비밀을 알게 된 나는 소속간부들과 정치보위부에서 더욱 철저한 감시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2월 중순 우리인접사단인 25사단 42연대에서 병사 한 사람이 건빵을 훔쳐먹다 발각돼 창고관리자와 싸우다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도망치다가 소대장 등 7명을 사살, 자기도 자살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전방소대에는 대대적인 사상검열이 시작되어 탈출했다.
-김부성씨의 직책은 무엇이며 땅굴공사에 참여하게 된 경위 등은?
▲김=나는 68년 8월부터 72년 9월 중순까지 개성시 만월동 간첩안내기구 53연락 소에서 간첩안내원으로 근무하다가 동굴작업기술요원으로 차출되어 약 1주일 동안 동굴측량기술을 배웠으며 72년 1월에는 측량을 시작했고 72년 10월부터 2∼3개월간씩 3차에 걸쳐 콤프레서 조작요원으로 일했다.
이 공사는 72년 7월부터 시작됐는데 내가 참가한 판문점 땅굴은 현재 중앙분계선을 2백 ∼3백m 넘어 잇는 걸로 안다.
이 땅굴은 ⓛ전면전의 경우대량의 병력을 후방에 투입. 3일 이내 남한 안 중요지역을 점령하고 ②남한 안에 대규모 무장폭동이 일어나면 게릴라 부대인 특수 8군단과 경보병부대병력을 투입하며 ③대남 간첩을 침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작업지역은 어디며 공사 방법 등은?
▲김=판문점 서남쪽 약 4㎞지점이다. 이밖에도 고낭포·평강 및 중·동부전선 여러 곳에서 파고 있고 노동당 연락부 및 인민 무력부 등 이 분담. 공사를 진행, 현재는 거의 완공 단계이다.
동굴 입구에는 3㎜ 철판으로 견고히 제작된 철문이 있고 출구는 남한남방한계선 이남에 5개나 된다.
동굴 안에는 목제 침목 위에 60㎝간격으로 레일이 부설돼 있고 20m 간격으로 백열전등이 서리돼 있으며 유선전화시설과 환풍기 등이 설치돼 입구로부터 6백 30m지점에는 지하수 처리용 물탱크 1개소(80m)ㅗ아 배수용 펌프 2개, 그리고 휴식 실·변소 등 이 각각 1개씩 있다. 동국은 직선이 아니고 상하경사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착암기·콤프레서·TNT 등을 장비로 썼다.
하루 15∼20명을 1개조로 50명이 3교대 24시간 작업에 임하고 하루 평균 4∼5m쯤 굴진 하고 있다.
▲유=북괴군 12사단지역에도 땅굴이 있다. 나는 72년 7월부터 현재까지 평강군 전승리 북방한계선상에 있는 서산봉우리에 있는 갱도입구로부터 1천m밖에 떨어진 곳에 근무해 땅굴을 잘 알고 있다. 이 땅굴은 72년 3월에 착공, 현재는 거의 완공단계이며 입구는 1개이지만 중앙분계선을 지나면 출구가 여러 갈래로 나눠진다고 들었고 이 공사가 이미 국군에 탐지됐다는 말도 들었다.
이 곳에서 일하는 모든 군관과 가족은 가까운 곳에서 집단생활하고 여행은 일체 금지돼 있다.
-북괴군의 전쟁준비 실태는?
▲유=74년 5월 김정일이 싸움준비지표라는 걸 만들어 전군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6월부터 9월 초순에 이르기까지 중동 전에 대한 교훈을 토대로 대대장 급은 40일간 중대장 급은 30일간·소대장은 35일간의 학습을 실시, 75년은 병사를 싸움꾼으로 준비하는 해라고 전제, 1월은 백발백중의 명사수양성의 달, 2월은 각개병사의 훈련과 전쟁터에서 취할 동작을 익히는 달 등으로 정했다고 들었다.
-김일성 집단의 사회혼란 도발행위에 대한 움직임은?
▲유=4·19같은 혼란기가 북괴의 혁명과업수행의 시기라고 하면서 북괴는 74년 4월25일을 기해 남한의 소위 인민혁명 당·통일혁명 당이 대대적으로 봉기하도록 되어 있는데 서울시내 모 대학교수로 있는 인혁 당 요원이 변절함으로써 좌절됐다고 들었고, 이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 땅굴작전으로 전환했다.
-북괴의 속전속결의 전략이란?
▲김=당 창건 30주년(75년 10월10일) 이전까지 6개년 경제계획과 현재 진행중인 땅굴 공사를 빨리 끝내 대사변이 발생하면 특수 8군단과 특공대들을 침투시켜 한국 안의 주요지점을 점령하는 것이 속전속결의 내용이다.
이 전략은 미군이 본토에서 공수 지원하는 시간을 3일 이후로 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승인했다는데?
▲유=군은 김정일 말씀 노트를 따로 만들어 학습을 하고 북한 주민은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최근 북한주민들 사이에 김일성의 목뒤에 혹이 있다는 소문이 알려져 김정일을 후계자로 뽑은 것으로 안다.
-북한 주민의 식생활과 사회생활이 비참하다는데?
▲유=식량부족 사태가 심각하다. 73년 말부터 군인과 주민에게 하루 1백g씩 식량을 줄여 배급, 부족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 암거래가 생기는 등 부작용이 크다.
매년 6∼8월께 면 80%의 주민들이 돼지사료인 밀기울·죽 등으로 연명하고 이 때문에 자살하는 자도 있다.
군 내부에서는 건빵 절취 등으로 총기사고까지 발생하고 있다.

<-남한의 사회생활을 보고 느낀 소감과 북한에 남긴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북한에 있는 내가 아는 가족 및 친지들은 김일성의 모든 정책을 반대, 투쟁해야 할 것이다. 이곳은 호화로운 자중건물과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유=부모·형제·처자식·친척들이 김일성의 속임수를 깨닫지 못함이 안타깝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