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술과 싸움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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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 전 친정 아버님의 회갑 때 일이다. 객지로 뿔뿔이 흩어졌던 형제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서로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즐겁게 담소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가운데 오빠의 아들인 세 살 박이 조카 녀석이『우리 아버지 순경인데 술 먹으면 누구든지 이긴다. 우리 아빤 수갑하고 총도 있는데…』하면서 제법 으시대는 품이 여간 귀엽고 웃으 운 게 아니어서 방안엔 폭소가 터졌다. 생김생김도 여자처럼 예쁘장하고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하며 언제나 웃음과 싹싹함을 잃지 않는 둘째 오빠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조카녀석의 말 마 따나 수갑과 총을 갖고 다니는 순경이다. 경찰 직에 투신하기 전엔 술도 못하던 얌전한(?) 오빠가 직업의 영향인지 정말 술을 많이 마신다.
『그 사람 술 안 먹으면 세상에 둘도 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오빠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얘기한다.
과음하면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지 올 캐 언니로부터 술 때문에 싸움을 한 적도 있고 실수를 한 적도 많다고 들었다.
동심은 거짓을 모르는 법, 보고 듣는 그대로 조금도 과장 없이 얘기하는 것이리라. 술 먹은 저의 아빠가 싸움하는 걸보고, 이기는 걸(?) 본 모양이다. 『대성이 너희 아빠 술 먹으면 이기고 술 안 먹으면 지지?』하며 막내 동생이 짓궂게 묻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환경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고 느꼈다. 더욱이 어린이들에겐 옳고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 어른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겠 음을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이지나<부산시 동래구 안락동 630의19 11통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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