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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서 꽝, 맨홀 뚜껑 7m 날아갔는데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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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25일 주유소의 유류탱크를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 중인 합정동 S주유소. 해당 주유소에서는 지난해 12월 9일 유증기 폭발사고가 있었지만 철저한 조사나 안전점검 없이 공사가 계속됐다. 김성룡 기자

지난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S주유소 공사현장. 휘발유를 저장하는 기존의 유류탱크를 새것으로 교체하기 위한 공사였다. 다져진 모래 위에 철근 골조를 바닥에 까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12월 9일 낮 12시 ‘유증기(油烝氣)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로 현장에서 일하던 김모(57)씨 등 인부 2명이 다쳐 이대목동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럼에도 사고 당일부터 두 달 반 이상 관할 소방서의 안전점검 없이 공사는 계속됐다.

 특히 현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유증기 폭발 사고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어찌된 일일까.

  목격자들은 간단한 사고가 아니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 주유소 뒤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는 “포탄 소리 같은 굉음이 들려 깜짝 놀라 나가보니 먼지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유소 인근 A호텔 경비초소에서 일하던 이모씨도 “주유소 탱크의 맨홀 뚜껑이 7m 높이의 호텔 지붕에 날아가 있었고 가림 천막이 난도질당한 듯 찢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길 건너를 지나던 박모씨도 “열린 맨홀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에 A호텔은 사고 발생 나흘 뒤 마포소방서에 안전조사를 요청했다. 사고 다음 날에도 공사가 계속돼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주유소 측은 사고 당시 출동한 소방관 정모씨에게 “철강 보강공사 중 빔이 떨어져 일어난 사고”라고 설명했고 정씨는 출동보고서에 그대로 적었다. 이후 마포소방서 조사팀 관계자는 “낙하 사고나 유증기 폭발 사고나 같은 사고인데 무슨 차이가 나느냐”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12월 16일과 23일 내놓은 1, 2차 조사 결과 ‘유증기 폭발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마포소방서 측은 사고보고서에 다른 맨홀 사진을 사고 현장 사진인 것처럼 첨부하기도 했다.

 이에 A호텔 측은 다시 마포구청 건축과에 민원신고를 했다. 구청은 안전행정부 산하 소방재난본부 조사팀에 조사를 의뢰했다. 소방재난본부는 지난 1월 중순 사고 40일 만에 “유증기 폭발”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최종 보고서에는 “폭발에 따른 압력 발생 흔적이 곳곳에 있다”고 적시됐다. 이에 대해 마포소방서는 "폭발이 아닌 단순 사고로 보이는 부분도 있어 그런 결론을 내렸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증기 폭발이라는 결론이 나온 후에도 별도의 안전조치는 없었다.

 유증기 폭발은 흔히 ‘도심 속의 폭탄’으로 불린다. 2012년에는 거여동의 한 주유소에서 지하 탱크를 청소하던 근로자 2명이 유증기 폭발로 사망했다. 대전대 소방방재학과 황철홍 교수는 “폭발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유증기 누설이 일어났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그런 조치 없이 공사를 강행한 것은 심각한 안전 불감증 사례”라고 말했다.

글=구혜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유증기=영어로는 ‘Oil Mist’다. 입자의 크기가 1~10㎛인 기름방울이 안개 형태로 공기 중에 분포돼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연료유, 윤활유, 유압기유 등이 고압으로 미세한 틈으로 분사돼 생성된다.

알려왔습니다 위 기사에서 ‘두 달 넘게 안전조치 없이 계속 공사’라는 내용과 관련, 마포소방서 측은 “적법하게 민원처리를 했으며 주유소 인근 A호텔이 낸 공사중지가처분신청에 대해 지난달 21일 법원은 추가 사고 발생 위험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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