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신태환|서울대학교 지기로서의 마지막 소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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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올 들어 서울대학교가 도처에 산재해 있던「캠퍼스」를 정리하고 관악산록 단일「캠퍼스」로 이사를 갔다. 어느「캠퍼스」보다 오래고 태학의 심장부이던 본부와 문리과 대학이 있던 동숭동「캠퍼스」가 텅 빈 것 같아 오가는 사람들에게 어딘지 서운함을 금치 못하게 한다. 비록 일제 때 지은 집들이지만 독일식의 멋진 정든 집들이다.
고색 창연한 백만 장서의 중앙도서관을 중심으로 전개된 오랜 풍상에 얽힌 갖은 얘기 거리를 담은 이 옛「캠퍼스」는 한국근대「아카데미」의 본산으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 고전적「아카데미」에 야릇한 친근감과 향수를 느낀다. 거기서 배출된 수 많은 시인·과학자·종교인·실업가·언론인·정치인들은 이 낡은「캠퍼스」를 그들의 정신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l백을 헤아리는 학과목, 현대적 시설의 필요성, 학생수의 증가 때문에 이 좁고 낡은「캠퍼스」가 시대의 요청을 등지고 언제까지나 구 태를 고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종합캠퍼스가 꾸민 멋진 학원도시>
더구나 서울대학교란 발생사적으로 볼 때 l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가 설치됨에 따라 그 이전에 있던 각종 고등 교육기관들이 편입됐고 따라서 다소는 위치를 변경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원래 있던 자리를 지켜 왔기 때문에 서울시내만 해도「캠퍼스」가 대 여섯 군데로 나뉘어져 서울대학교는 종합 대학이면서도 대학연합회 같은 감을 주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 새롭고 멋진 단일「캠퍼스」를 갖는다고 하는 것은 서울대학으로서는 크나 큰 숙원이었다.
이제 그 숙원을 이루고 관악산록에 일대「파노라마」를 펼쳐 놓고 그 발전에 신기원을 시작하게 된 것을 볼 때 기쁘기도 하다. 1만5천을 넘는 학생, 2천여 명의 교수·강사, 1천여 직원,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뒷바라지 할 상점·은행·우체국·음식점·다방·책방·양복점·세탁소 등등 적어도 5만은 넘는 일대 대학도시가 전개되는 것이다. 물론 이 학도가 불편함이 없이 충분한 기능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이제 과거와 같은 어딘가 엉성하던 서울대학교의 낡은 면모는 사라지고 명실공히 종합대학으로서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서울대학교는 놀랍게도 대소 독립한 건물이 1천여 동, 지리산·관악산 등에 5천만 평이 넘는 광대한 실습 림을 가지고 있다. 그 방대한 서울대학교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찾는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질서를 경하한다. 그러나 차제에 시설의 근대화 이상으로 알찬「아카데미즘」을 어떻게 자유롭게 성장하게 하고 새로운 역군들이 혼연히 이 사회에 참여하게 하느냐는 데 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는 동숭동「캠퍼스」앞을 지날 때마다 이 자리야말로 한국사회의 학문정신의 가장 알찬 본 거이고 희망이 서린 터전이라고 생각해 왔다.

<동숭동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향수>
이른 아침 등교 길을 서두르는 학생들의 바쁜 걸음 거리에 용솟음치는 힘을 느껴 왔고 밤늦게 대학 앞을 지날 때면 불야성을 이룬 중앙도서관의 불빛을 보고 꺼질 줄 모르는 한국의 희망을 감득 했다.「마로니에」의 그늘 밑에서 담론 풍 발하는 청년들의 약동하는 생명 가운데 한국사회의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
4·19탑 앞에 옹기중기 모여 속삭이는 학생들의 대화 가운데 민족 고난 기 청년들의 용기와 예지를 엿볼 수 있었다. 우거진 자 향의 숲, 「마로니에」, 산 목련의 거목, 예부 터 한국의「아카데미즘」을 상징하는 은행나무. 연륜을 가리키는 담 장의 덩굴, 그 가운데 나는 서울대학교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번영하는 조국의 한없는 힘을 느껴 왔다.
나는 한때 이 멋진 대학교의 총장이란 대학지기 노릇을 했다. 서울대학지기란 등대지기와도 같다. 바다의 모진 풍랑으로부터 배들의 항로를 조명하듯이 서울대학지기는 이 사회의 광란하는 풍상을 헤치고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갈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대학교 생활은 화려하고 장엄하고 격렬하다.
그러나 교수와 학생의 편에 서서 때로는 막힌「아카데미즘」의 길을 트는 대학지기의 일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등대지기가 농 무속을 헤매는 난항의 배들에 무 신호를 보내는데 흡사했다. 방향감각을 일깨워 주어도 구할 길이 막연했다. 그래서 때로는 위정자를 욕했고 무책임한 사의를 원망했고 몸부림치는 학생들을 부등켜안고 울부짖어 보기도 했다.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정든 옛 교정이 좋아만 진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당분간은 서울대학인들에게 동숭동 교정에 대한 향수는 그칠 줄을 모를 것이다. 더욱이 새「캠퍼스」에 새 희망을 걸면서도 그들의 정신의 고향이 무너지고 호화「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데는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이제 새로운 대「캠퍼스」를 이룬 이 마당에 무슨 감상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지성들이 모이는 명소로 남겨 뒀으면>
그러나 그것이 소박한 감상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대학의 발상지는 고이 간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 제안하고 싶다. 적어도 대학본부·중앙도서관·문리과 대학만은 서울대 동창회에 주어 버리라는 것이다. 또는 서울대 동창회관으로서가 아니라도 모든 한국의 지성인들이 모여 회합하고 독서하고 먹고 자고 하는 말하자면 한국지성인들이 좋아서 모이는 자리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술집은 많아도 건전하고 평화롭게 모여서 즐길 수 있는 장소는 너무나도 없다. 「아파트」를 지을 자리는 한강변에 얼마든지 있지 않으냐 말이다. 한국 지성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자리에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명소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것이 옛 서울대학지기의 동숭동「캠퍼스」에 대한 마지막 소고이다.

<필자 약력>
◇아세아경제 연구소장
▲1912년 7월 인천 출생
▲전 서울대 총장
▲서울 성북구 성북동 132의2 (92)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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