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던진 죄 … 징역 2년6개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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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을 던졌을 뿐”이라고 호소했지만 중형을 선고받은 야로슬라프 벨로소프. [AP=뉴시스]

소치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새롭고 강력한 러시아와 함께 온화한 21세기 차르(황제)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는 듯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이후 ‘소치 미소’는 사라졌다.

 먼저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해 중형이 떨어졌다. 모스크바 지방법원은 24일 2년 전 푸틴 대통령 집권 반대 시위에 참가했던 7명에게 각각 2년6개월~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2년 5월 푸틴 대통령의 3기 집권 취임식 전날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돼 기소됐다. 이 가운데 22세의 대학생 야로슬라프 벨로소프는 “노랗고 둥근 형상의 미확인 물체”를 진압 경찰에게 던진 혐의로 2년6개월형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던진 것이 레몬이었다고 호소했지만 검찰은 당구공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초 벨로소프를 비롯한 7명은 지난 21일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법원은 형기 선고를 올림픽이 끝난 뒤로 미뤘다. 변호인단은 이들이 ‘대규모 폭동’에 가담했다는 혐의에 대해 시위대가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을 뿐이라고 맞섰다. 특히 이번 중형 선고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한 우크라이나 시위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영 TV는 이번 재판 내용을 보도하면서 당시 시위 영상과 함께 우크라이나 시위 영상을 함께 내보냈다. 뉴스 앵커는 “정부가 단호히 대처하지 않으면 결과가 불 보듯 뻔하다”는 말을 곁들였다.

모스크바 지방법원이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중형 선고를 내린 24일(현지시간) 법원 밖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던 록밴드 ‘푸시 라이엇’의 멤버 마리야 알료키나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스1]

 이날 법원 밖에서 판결에 항의하던 200여 명을 포함해 붉은광장 집회 참가자 수백 명이 연행됐다. 반푸틴 공연으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말 사면된 여성 록밴드 ‘푸시 라이엇’ 멤버 2명도 포함됐다.

 러시아 동성애자들도 소치 이후를 두려워하고 있다. 올림픽 기간 중 푸틴은 동성애자로서 첫 번째로 금메달을 딴 네덜란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이레인 뷔스트를 포옹하고 축하인사까지 건넸다. 미성년자에게 동성애와 관련한 선전을 금지하는 이른바 ‘반동성애법’을 밀어붙인 푸틴으로선 이례적인 유화 제스처였다.

 하지만 개막식 당일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게이 인권운동가들이 행진 중에 구속되는 등 소치 외곽에선 탄압이 여전했다. 동성애 인권사를 연구해 온 마이클 브롱스키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가 주목할 때만 조심할 뿐 사회구조나 관련 법률이 그대로인 한 러시아에서 동성애자의 인권 보호는 요원하다”고 진단했다. 미 데일리비스트는 두마(러시아 연방하원)가 곧 동성 부모의 자녀 양육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은 인근 국가들에 ‘도미노 효과’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친러시아파인 야누코비치가 쫓겨나기 전 반동성애법을 발의해 심의 중이다. 몰도바는 이미 통과시켰다. 최근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우간다 등이 동성애처벌법을 통과시킬 때도 “서구 문화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반동성애=반서구=전통 수호’ 공식이 미국·유럽의 보편적 인권과 대결하는 양상이다.

 ◆푸틴, 소치 한국관만 방문 안 해=푸틴 대통령이 소치 올림픽 기간 중 한국 홍보관을 방문하지 않아 외교적 불쾌함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리아노보스티를 비롯, 채널1과 채널러시아 등 러시아 매체는 올림픽 개막식에 차기 개최국인 한국이 대통령이나 총리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보낸 데 러시아 국민이 섭섭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푸틴이 각국 전시관을 대부분 둘러보면서도 한국관은 들르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한국은 폐막식에도 당초 문화부 제2차관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차기 개최국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홍원 총리가 4박5일 일정으로 참석해 폐회식 리셉션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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