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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4) 돼지고기 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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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비교적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데다 삼겹살·등심·안심·갈비 등 부위별로 다양한 조리방법이 가능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식자재입니다. 江南通新 독자가 뽑은 서울 최고의 돼지고기 구이집 두 곳은 각각 돼지갈비와 삼겹살을 전문으로 하는 곳입니다. 두 곳 모두 칼집을 잘 내 고기가 잘 구어지도록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봉피양에서는 고급 소고기집처럼 직원들이 고기를 계속 구어준다. 그래서 태우지 않고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1위 봉피양 방이점
비싸면 어때 … 문턱 높였더니 더 많이 찾는 돼지갈비집

갈비 1인분 2만4000원.

 처음엔 소갈비인 줄 알았다. 다시 보니 돼지갈비 가격이다. 보통 돼지갈비집의 두 배나 비싸다. 그런데도 봉피양 방이점은 식사 때마다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매장 앞엔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천막까지 설치해 놨다. 봉피양은 벽제갈비로 유명한 벽제외식산업개발이 운영하는 돼지갈비·평양냉면 전문점이다. 1998년 방이동 지금 자리에 문을 열었다.

 “그 시절만 해도 돼지고기는 싼 고기의 대명사였거든요. 돼지고기는 제대로 손질하지도 않고 막 다루는 돼지고기집이 많았어요. 돼지고기를 비싸게 팔면 누가 사먹겠냐는 생각에 고기 품질이나 서비스를 높일 생각을 못했던 거죠. 그런데 전 왠지 돼지고기도 소고기처럼 고급화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어요. 평소엔 좋은 것만 먹는 부자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도 돼지고기 먹고 싶은 날이 있을 거 아니에요. 돼지고기는 먹고 싶은데 너무 허름한 덴 가긴 싫고. 그럴 때 갈 수 있는 제대로 된 집을 만들려고 했어요.”

 봉피양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벽제외식산업개발 김영환(66) 회장이 이렇게 답했다. 사실 가격이 부담스러워 벽제갈비를 자주 찾지 못하는 고객을 위해 문턱을 좀 낮추자는 의도도 깔려있었다. 게다가 1998년 구제역 파동으로 소고기 수요가 떨어진 것도 돼지고기 메뉴 개발을 부추긴 한 요인이다.

 이미 여럿 있는, 그러니까 다른 돼지고깃집과 똑같은 돼지갈비론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벽제갈비가 쌓아온 명성도 지키고 싶었다. 그 결과가 차별화, 그리고 고급화였다. 우선 갈비 손질부터 달리했다.

 김 회장은 “돼지고기는 원래 식감이 부드러워 소고기만큼 정성들여 제대로 손질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먹을만하기 때문에 당시 다른 돼지갈비집 대부분 고기 손질을 소홀히 했다”며 “봉피양은 소갈비와 똑같이 힘줄과 지방을 제거하는 등 정성스레 손질했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돼지고기는 싼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에 제대로 손질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고 설사 기술자가 있다해도 인건비가 비싸 사장이 고용하는 것을 꺼려했다. 봉피양은 벽제갈비의 소갈비 손질 노하우를 가진 기술자가 메뉴 개발을 맡아 소갈비 다루듯 섬세하게 손질했다.

 소갈비에 주로 쓰는 다이아몬드 정형법도 도입했다. 고기 양면에 각각 다른 방향으로 칼집을 내는 정형 기법으로, 고기를 펼쳤을 때 고기 사이사이로 다이아몬드 모양의 구멍이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렇게 칼집을 내면 양념이 고기에 잘 배일 뿐 아니라 구울 때 고르게 훈연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당연히 돼지고기의 품질이다. 국내산 냉장육, 그 중에서도 돼지 한마리 무게가 100kg 내외의 것만 사용한다. 25년째 벽제갈비와 봉피양의 메뉴개발을 맡고 있는 윤원석(54) 상무는 “90~100kg 크기의 돼지가 마블링이 적당하고 육질이 좋다”고 말했다. 고기 두께는 1㎝정도로 두툼하게 손질한다. 그래야 육즙이 풍부하고 씹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양념엔 한방재료를 넣었다. 윤 상무는 “맛깔스러워 보이게 하려고 간혹 캐러멜 소스를 넣는 곳이 있는데 우리는 숙지황을 쓴다”고 말했다. 철분 함량이 많아 보혈 효과가 있는 숙지황은 짙은 갈색을 내는 한약재로,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잡아준다. 칡덩쿨도 같은 역할을 한다. 또 설탕은 최소로 넣고 감초와 조청으로 주로 단맛을 낸다.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는 칡덩쿨로 잡았다. 이렇게 간장과 한약재 등을 넣은 양념을 한번 끓인 후 식혀 여기에 다시 사과·배 등을 갈아 만든 즙을 섞어 사용한다.

김영환 회장

 음식 뿐 아니라 인테리어와 서비스도 차별화했다. 삼겹살이나 항정살 같은 생고기를 팔지 않는 게 그 중 하나다. 김 회장은 “봉피양에서도 초기엔 생고기를 팔았다”며 “그런데 구울 때마다 기름이 튀고 벽에 기름냄새가 찌들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아예 메뉴에서 뺐다”고 말했다. 또 고급 소갈비집처럼 직원들이 직접 고기를 구어준다. 손님을 위한 서비스인 동시에 가장 맛있는 갈비를 제공하기 위한 거다. 양념갈비는 잠시만 한 눈 팔아도 쉽게 타 버리기 때문에 고기 잘 굽는 직원들이 계속 뒤적여가며 굽는다. 직원의 빠른 손놀림을 보는 것도 이집 돼지갈비 맛에 대한 기대를 높여준다.

 김 회장은 “한쪽 면만 불에 오래 닿으면 타서 퍼석해지지만 계속 굴려가며 구우면 육즙이 빠질 새가 없어 고기가 부드렵다”고 했다.

혹시 돼지갈비를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을까.

 김 회장은 “냉면을 같이 먹으라”고 했다. 어찌 보면 뻔한, 그러면서도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답이었다. 그가 제안하는 방식은 갈비가 6~7점 정도 남았을 때 냉면을 함께 먹는 선육후면(先肉後麵)이다. 술을 먹고 난 뒤에 면을 먹었던 전통적인 식문화인 선주후면(先酒後麵)을 변형해 이름붙인 것인데, 시원한 면이 입 안의 기름기와 느끼함을 없애준다. 특히 벽제갈비에서도 유명한 평양냉면은 돼지고기와 찰떡궁합이다. 식사 후 먹는 맛보기 냉면이 8000원이다.

 좋은 재료에 정갈한 인테리어, 직원 서비스까지, 이곳이 다른 돼지고기집과 다른 건 분명 알겠다. 하지만 여전히 비싼 가격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김회장은 “루이뷔통한테 왜 가방을 그렇게 비싸게 파느냐고 하진 않잖아요. 똑같아요. 봉피양은 돼지갈비를 제대로, 그리고 맛있게 먹고 싶은 날 가는 특별한 곳이예요. 벽제갈비가 소득수준 상위 5%를 위한 곳이라면 봉피양은 20%를 위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봉피양은 1호점인 방이점을 비롯해 서울에만 서초동·도곡동·청담동·용강동·신월동·통의동·동자동 등 8곳이 있는데 동자동(서울역점)을 제외하고 직영이다.

 김 회장은 “프랜차이즈를 하면 각 매장 사장이 돈 벌 욕심에 본사에서 공급한 2인분을 3인분으로 쪼개 내거나 다른 것을 섞어낼까봐 걱정”이라며 “앞으로 몇 군데가 생기든 모두 직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흑돈가 삼성점은 삼겹살 덩어리 중 기름이 많은 부위는 걷어내고 칼집을 내 손질한다.

2위 흑돈가 삼성점
30% 걷어낸 삼겹살 … 버린 만큼 손님 몰리더라

삼겹살은 남녀노소 다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가족 외식 메뉴로도, 직장인 회식 메뉴로도 인기다. 그만큼 식당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흑돈가 삼성점은 그 숱한 삼겹살 전문점 중에서도 늘 사람이 꽉꽉 차는 곳이다. 불경기라 많은 식당이 한산하다는데 늘 30분 이상 기다려야 자리에 앉을 수 있다. 1·2층 400석으로 규모가 꽤 큰 데도 그렇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돼지고기집을 일부러 찾지 않던 젊은 여성뿐 아니라 외국인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매장에 가보지 않았다면 아마 “강남 노른자 자리에 있어서 그렇겠지”라고 쉽게 짐작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흑돈가가 들어서기 전, 이 자리에 있던 음식점 대부분 큰 손해를 보고 문을 닫았다. 코엑스몰 인근 인터컨티넨탈 호텔 맞은편인데 평소 사람들 왕래가 적어 쪽박자리로 통했다.

 그래서 곽옥주(59) 대표가 지금 자리에 흑돈가를 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모두 말렸다. “특히 이 동네를 잘 알수록 더 말리더라고요. 다들 여긴 사람들이 안 다니는 곳이라는 거에요. 제가 식당 문 열기 전에 이 건물 2층에선 젊은 친구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했는데 3년 만에 10억원 손해 보고 문 닫은 전력도 있더군요.”

 그러나 곽 대표는 자신이 있었다. 흑돈가가 강남에 입성하기 전에 이미 ‘대박집’이었기 때문이다. 곽 대표는 제주도 본점을 운영하는 임종훈 대표와 고등학교 친구 사이로, 흑돈가 삼성점은 둘을 포함해 고등학교 동창 6명이 같이 투자했다. 제주도에서 성공한 흑돈가를 서울에서 어떻게 성공시킬까 고민하던 임 대표와 친구들이 캐나다에 살던 곽 대표를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곽 대표는 한국에서 가구공장과 무역회사 등을 하다 15년 전 캐나다로 이민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들이 그의 사업 경험을 빌리겠다며 연락한 것이다. 곽 대표는 “가게 앞을 오가는 손님만으론 어차피 음식점이 잘 될 수 없다”며 “음식 맛만 있다면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로 주변을 설득했다.

 그렇게 2009년 삼성점 문을 열었다. 이후 서울에만 5곳이 더 생겼다. 삼성점은 그중 가장 잘되는 집이다.

 비결을 묻자 “정직함”이라는 너무 정직한 답이 나왔다. “뻔한 얘기 같지만 정직하게 장사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예를 들어 삼겹살은 돼지고기 부위 중 가장 비싸거든요. 이때 삼겹살 옆쪽 저렴한 부위까지 붙여서 팔면 당장은 쉽게 이익을 낼 수 있잖아요. 하지만 언제까지 손님을 속일 수 있겠어요. 맛 없으면 손님은 다시 찾지 않아요.”

 바로 이런 때문에 사장 역할이 중요하단다. 그는 “음식 맛은 사장이 만드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매일 매장을 지킨다. 규모가 큰 음식점일수록 사장이 자리를 비우는 곳이 많지만 곽 대표는 늘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카운터에 서서 손님 반응을 세심하게 살핀다. “계산하고 나가는 사람 표정을 보면 만족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반응이 안 좋을 땐 왜 그런지 물어보고 바로 주방이나 홀로 뛰어들어가 문제점을 확인해요. 문제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종업원을 혼내서 고쳐야죠.”

 직원에게만 이렇게 엄하게 구는 게 아니다. 돼지고기 유통업자들 사이에서 곽 대표는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고기가 신선하지 않거나 다른 부위를 속여 팔거나 하면 바로 알아차리고 반품시킨다. “유통업자들 말이 흑돈가 삼성점 하면 ‘아~ 거기’라며 모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대요. 거기는 장난치면 다 돌려보내는 곳 아니냐면서요.”

곽옥주 대표

 실제로 곽 대표는 생고기 냄새로 신선함을 가늠한다. 그는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는 건 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까다롭게 고기를 받지만 매장에 들여온 고기가 모두 손님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이중 70%만 손님에 낸다. 보통 삼겹살은 큰 덩어리째로 들어오는데 기름기 많은 부위는 다 걷어내 버린다. 또 짜투리는 김치찌개에 넣는다. 그는 “신선한 돼지고기를 가득 넣어 김치찌개를 끓이기 때문에 점심에 김치찌개 먹어본 손님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다들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버릴 건 버리고 찌개에 들어갈 건 들어가고 남은 가장 좋은 삼겹살을 칼집을 낸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게 칼집의 간격이다. 간격이 좁으면 구울 때 육즙이 다 빠져 푸석해진다. 반대로 간격이 크면 고기가 고루 구워지지 않는다. 고기의 두께는 1㎝가 적당하다고. 이보다 두께가 더 얇으면 구울 때 쉽게 말라 퍼석거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한 고기는 참숯 위에 석쇠를 놓고 굽는다. 곽 대표는 “팬에다 삼겹살을 구우면 기름이 잘 빠지지 않아, 굽는 게 아니라 튀겨진다”며 “참숯과 석쇠를 이용하면 고기 기름기는 쏙 빠지고 숯 향기가 고루 배어 맛있다”고 말했다.

 흑돈가의 인기 비결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멜젓(멸치젖의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 추자도에서 가져온 멜젓에 마늘·고추 등 8가지 양념을 넣어 숙성시켜 만든다. 삼겹살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석쇠에 올려 끓인 후 먹어야 멜젓 고유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곽대표는 마지막으로 삼겹살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줬다. 먼저 석쇠에는 고기를 2덩이 정도만 올린다. 많이 올리면 고기가 말라 푸석해지기 때문이다. 고기를 구울 땐 자주 뒤집어선 안된다. 육즙이 고기 표면 위로 올라오면 한번 뒤집고 은은한 불에서 천천히 익혀야 한다.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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