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전시] 25년만에 찾은 옛 동네의 '기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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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의 ‘동네(Village, 43×29×41㎝)’. 거꾸로 서 있는 나뭇가지도 호두나무를 깎아 채색한 조각이다. [사진 구현모·PKM갤러리]

미술가 구현모(40)씨는 집에 관심이 많다. “사람이 태어나 접하는 가장 친숙한 공간이자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창문의 크기와 높이조차 알게 모르게 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다.

  전시장 코너에 거꾸로 매달린 집 모양 조각품은 어릴 적 살았던 서울 사직동 옛 집과 골목을 떠올리며 만든 것이다. ‘동네’라는 제목의 이 작품을 두고 그는 “동네마다 고유의 기울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울기’는 동네 자체 뿐 아니라 그곳의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초등학생 때 살던 사직동에 25년만에 찾아갔을 때의 낯설음, 기억 속 공간과 실제 변한 공간 사이의 기울기, 그 사이에 바뀐 관찰자의 관점 같은 것 말이다.

 어느 쪽이 실제 사직동일까. 세상은 꼭 객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주관적 해석이 늘 개입된다. 아이의 눈높이, 아이의 몸에 맞는 활동 반경은 점차 확장된다. 작가의 관심도 집에서 동네로, 그리고 유학 가 지냈던 독일 드레스덴으로 확장된다.

  서울 율곡로 PKM갤러리는 반지하부터 2층까지 이어진 공간이다. 밖을 내다보면 골목길을 거니는 사람들 발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닥이 지붕이 될 수도, 지붕이 바닥이 될 수도 있는 모호한 기울기다. 해서 이곳 전시장엔 아기 요람 혹은 흔들의자의 발을 달아 기울기울하는 가설 설치물을 놓았다. 제목은 ‘지붕’. 어린 시절 집과 골목은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에 근거를 둔 인식이란 게 그렇지 않나. 절대적인 것은 없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사라지니까. 3월 7일까지. 02-734-9467.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전은 작은 작품을 미묘하게 숨겨둔 전시다. 전세계 3500만명, 국내 350여명에 이른다는 난민이지만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실제 난민 30인을 3D 카메라로 찍어 3D 프린터로 출력해 제작했다. 이 미니어처 인형들은 화장실 거울 위, 비상구 표지판(사진), 창틀, 카페 진열장 등 미술관 곳곳에 숨어 있다. 난민 이름표에 담긴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그들의 사연을 알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제일기획과 공동 기획. 3월 2일까지. 02-2124-880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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