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엄마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11)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 코퀴틀람시에 있는 햄턴파크초등학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지난해 8월 학교(부산 신라대학교)에서 안식년을 받고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州) 코퀴틀람시(市)를 연수지로 정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코퀴틀람은 메트로(광역) 밴쿠버에 속한 인구 13만명의 소도시다. 메트로밴쿠버는 밴쿠버를 중심으로 24개의 지방자치단체가 모여있는 지역을 말한다. 지자체가 24개라 해도 인구는 230만명에 불과하다. 보통 “밴쿠버 산다”고 하면 실은 메트로밴쿠버인 경우가 많다.

 캐나다는 미국과 같은 북미지만 사회보장제도가 미국보다 훨씬 잘 갖춰져 있어 끌렸다. 또 아들(10·김서현)과 딸(5·리영)을 이곳 학교에 보내며 내 전공(교육학)도 제대로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햄턴파크초등학교에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행사가 한달에 한두번 열린다. 학생수는 330명에 불과하지만 이들 국적은 50여개국에 달한다. 지난달 열린 ‘다문화의 날 행사에서 리영이가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보고 있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이의 영어 실력이다. 아들은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1년쯤 다녔지만 영어로 몇마디 문장을 만드는 수준 정도였다. 이 실력으로는 수업은 고사하고 친구와 의사소통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한국에서 3학년 1학기까지 마쳤지만 햄턴파크초등학교 4학년으로 들어왔다. 학교에 간 첫날 눈치를 보니 아들은 선생님 말씀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알림장은 빈칸이었다. 한국에선 ‘책벌레’로 소문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지만, 영어를 못하니 학교 도서관 책은 그림의 떡이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수업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한국계 반 친구를 통역으로 두고, 우리 아이를 위해 따로 영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는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을 위해 EAL(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EAL은 영어 수준을 5단계로 나눠 전담교사가 그에 맞게 영어를 가르친다. 정상적 수업이 어려우면 하루 40분씩 따로 영어 수업을 받는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전담교사가 교실 안에서 숙제 등에 대해 도움을 준다. 또 독자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면 담임 교사가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한다. 다른 2명의 학생과 함께 전담교사에게 따로 영어 교육을 받자 4~5개월만에 아들의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물론 이해하는 단어나 표현에 한계가 있지만 학교 도서관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고 친구와 자연스레 이야기했다. 귀가 가장 먼저 트이더니 말하기, 읽기 순으로 향상됐다.

 교과목은 언어·수학·과학·사회·컴퓨터·음악·체육·컴퓨터 등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교과 내용은 기본에 충실했다. 원리를 이해해야 창의성을 높일수 있기 때문에 단순 암기를 요구하는 내용은 없다. 수학도 단순 문제풀이는 거의 없었다. 수학 교과서에 숫자보다 글자가 더 많은 것도 이런 이유다.

 이 학교는 교과서를 학교에서 제공한다. 윗 학년이 쓰던 책을 물려받고, 자신이 쓰던 책은 아래 학년에게 물려준다. 때문에 교과서에 줄 긋거나 낙서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곳 명문대학인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UBC) 서점에 가서 적잖이 놀랐다. 서점에는 밑줄 하나 그어져 있지 않은 중고 전공서적이 가득했다. 처음엔 “공부를 하기는 한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서점 관계자는 “어릴 때부터 책을 깨끗하게 쓰는 습관 때문에 중고 책도 거의 새 것처럼 깨끗하다”고 설명해줬다.

(4) 캐나다는 방과후 활동에 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방과후 활동으로 발레 수업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

 교과서는 보통 학교에 두고 다닌다. 그러니 선행학습이나 사교육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학교에서는 공부 습관을 잡기 위해 하루 30분 분량의 숙제를 내준다.하지만 방과후 활동은 적극 권장한다. 스키·스케이트·축구·테니스·수영 등…. 가장 인상적인 건 비용이 한국에 비해 참 싸다는 점이다. 60 캐나다 달러(한화 5만8000원)만 내면 방과후 활동으로 학교에서 두달간 축구와 테니스를 배울 수 있고 4·5학년은 30달러만 내면 전국 153개 주요 스키장의 리프트권을 각각 3개씩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5살짜리 딸아이가 같은 또래 아이 2명과 함께 전문강사로부터 10회 수영강습을 받는 데 50 캐나다 달러 남짓만 들었다.

 학교는 오전 8시50분까지 등교해 2시50분에 끝난다. 40분 수업하고 10분 쉬는 한국과 달리 1시간 35분간 수업하고 15분간 쉬는 시간(Recess), 다시 1시간 15분 수업하고 30분간 운동장에서 놀기 식으로 수업시간이 다 다르다. 점심식사는 15분 하고 다시 2시간을 더 수업한다.

(1)(2) 캐나다 초등학교는 넓은 잔디밭이 특징이다. 캐나다에서는 유치원(K)도 공교육에 포함돼 있
다. 5세때 K에 입학한 뒤 6세때부터 1학년이 시작된다. (3) 핼러윈데이 행사땐 학생 뿐 아니라 학부모와 선생님도 핼러윈 복장을 하고 행사에 참석한다.

 이곳 초등학교는 대부분 넓은 잔디 운동장이 있다. 그래서인지 틈만 나면 운동장에 놀라고 권한다. 겨울내내 비가 내리는데도 옷이 흠뻑 젖지 않을 정도로만 비가 오면 학생을 운동장에 내보낸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학생 복장도 잔디밭에서 뒹굴기 좋은 싸고 편한 옷이 대부분이다. 이 인근은 고급 주택이 많은 부촌(富村)이지만 한국에서 부모들 등골 휘게 만든다는 이른바 ‘등골브레이커’ 중 하나인 고가(高價)의 아웃도어 브랜드 캐나다구스 입은 학생을 거의 볼 수 없다.

 이 학교는 학부모 참여 행사가 많다. 지난달 30일 이 학교 강당에서 열린 다문화의 날(Multi-Cultural Day) 행사도 그 중 하나다. 벽에는 콜롬비아·아르헨티나·멕시코 등 남미 국가에서부터 프랑스·영국·이탈리아·노르웨이 등 유럽국가와 중국·한국까지 50여개국 국기가 붙어 있었다. 그 앞 테이블에는 각 나라의 전통 음식, 옷, 공예품 등도 있었다. 세계 각 나라를 소개하는 만국박람회 축소판 같지만 사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그 부모의 모국(母國)을 소개하는 행사다. 이 학교 학생수는 330명에 불과하지만 고향은 그야말로 5대양 6대주에 흩어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학생이 모여 있기 때문인지 이 학교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배어 있다. 영어가 어눌하다고 무시하는 일도 없다.

 ‘다문화의 날’ 같은 학부모가 참여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한달에 한 두번은 있다. 하지만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받거나 하진 않는다. 시간이 있어 봉사하고 싶으면 참여하고, 여의치 않으면 불참하면 그만이다. 행사 가운데 ‘대접하는 날’(Treat Day)은 반 별로 연다. 학부모가 프레첼이나 팝콘·쿠키·머핀 등을 준비해 학교에 기증하면 그 반 학생들은 이를 개당 50센트 정도에 다른 반 학생에게 판다. 이렇게 마련한 돈을 반 운영자금으로 쓰기도 하고 특정 행사 때 기부금으로 쓰기도 한다. 학생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자연스레 경제관념과 기부 문화도 익힌다.

 5살 딸은 이 학교 안에 있는 어린이집(Pre-school)을 다녔는데 그로 인한 장점이 많았다. 어린이집은 학교 소속이 아니지만 학교의 모든 행사에 참석한다. 한국에서는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을 다녔던 아들과 딸이 같은 울타리 안에서 교육을 받으니 남매간 우애도 깊어지고 부모 입장에선 아이 돌보기가 수월해 좋다.

햄턴파크초등학교는 어떤 곳
주변에 큰 숲, 가끔 곰·코요테 나타나기도

지난해 10월 햄턴파크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운동장 출입 금지령이 내려졌다. 비 오는 날에도 운동장에서 뛰어놀게 하는 학교가 왜 학생의 운동장 출입을 막은 걸까.

이유는 곰 때문이었다. 곰이 학교 운동장에 나타나 안전을 위해 학생 출입을 막은 거다. 이 학교는 코퀴틀람 시내를 내려다 보는 언덕의 중턱에 있는데, 주변에 큰 숲이 있어 가끔씩 이렇게 곰이나 코요테가 출몰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 덕에 학생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즐긴다. 한 학년에 반 1~2개, 한 반에 20~30명 정도다. 한 학년 수가 많으면 아래위 학년과 합쳐 반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4학년이 35명, 5학년이 35명 정도라면 25명 정원의 4학년과 5학년 반 하나씩을 만든 뒤 4학년 10명과 5학년 10명을 합쳐 4·5학년 반을 만드는 식이다. 담임 교사는 각 학년에 맞게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2000년 문을 열 당시 2층 건물 때문에 논란이 됐다고 한다. 2층 건물이 학생들의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이 지역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1층 건물이었다. 이 학교에는 교장과 교사 24명을 포함해 총 30명의 교직원이 있다. 

엄마 이경순(부산 신라대 교육학과 교수)
정리=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