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개관준비 3월1일 문열 민속박물관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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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추진돼 오는 민속박물관이 3월 1일 개관을 앞두고 마지막 정돈작업을 한창 서두르고 있다. 경복궁 후원의 전 미술관 건물을 증축, 개수해 들어앉게 되는 이 민속박물관은 문화재관리국 산하기관으로 발족하지만 민속자료를 보존·전시하는 첫 국립기관이란 점에서 그 성과가 주목되며 기대가 크다.
관리국은 민속박물관의 추진에 앞서 66년 경복궁내의 옛 궁전건물인 수정 전에 자료비치를 위한 민속관을 개설했으며 그것이 한 나라의 민속자료 진열 관으로서는 너무 비좁고 초라한 까닭에 규모를 확대, 박물관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지상 2층에 연건평 1천1백여 평의 새 건물을 마련하기 위해 1년 10개월에 걸친 공사가 계속중이며 그 동안 유물 1천여 점을 구입하는 등 2억9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에서 처음 설치하는 이 민속박물관은 기존의 국립박물관이나 2백억 원으로 신축계획인 민족박물관 또는 민영의 용인민속촌이 투입한 것에 비해도 너무 턱없는 예산이고 허술한 출발이다. 일부에서는『없는 것보다 낫지 않으냐』는 자위론도 있지만 그것이 박물관 구실을 하기엔 출발부터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첫째, 이 민속박물관은 이제까지 책임자 없이 무계획하게 개관 준비를 해 옴으로 말미암아 내실을 기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형식상은 관리국장과 문화재 2과장이 실무를 총지휘해 오고 있는데 이들 행정관은 막상 민속학이나 박물관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기껏 두 전문위원이 다소 자문해 왔을 뿐인데 관장이 각 분야 전문가의「팀원」부터 구성한 뒤 설치 준비를 하는 외국의 예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둘째, 단기효과를 노리려는 데서 생기는 졸속공사와 개관이다. 우선 건물공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한쪽부터 유물 진열을 하는 등 현장이 착잡하다. 박물관 건물은 유물의 영구보존 때문에 전기배선·공기조화·방음시설 등 이 진열에 앞서 재점검돼야 함은 물론 완공 후 2년간 비워 두어 건조시키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겨울 내내 공사하고 미처 마를 새 없이 진열을 서둘러 이 구석 저 구석에 벌써 곰팡이가 시커멓게 슬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진열 실 안에는 짚·나무·기타 가연성 물질이 수두룩한데도 화기경보장치나 전면 소화시설이 충분치 않다.
셋째, 그같이 부실한 진열실의 여건임에도 실내온도 및 습도를 면밀히「체크」하지 않고 있으며 「스팀」마저 고르지 않아 방마다 차이가 현저하다는 관계자들의 토로이다.
사실 민속품들은 습도에 민감한 섬유류·지류·칠기를 비롯하여 유물이 잡동사니를 이루어 앞으로 적잖은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넷째, 넉넉잖은 건물에다 진열 실만을 꾸미기에 치중하다 보니 작업실 및 보존 고를 전혀 고려치 않았다는 당초 설계자체의 차질이다. 이것은 민속 참고 품을 보관, 수리해 보여줘야 하는 박물관을 국립공보관 같은 전시공간으로 착각한데서 비롯된 커다란 맹점이다.
또한 진열 실 사이를 조그만 철문으로 가로막아 답답한 공문으로 위축한 점이라든가 기계실과 관람객의 소음처리도 어려운 문제가 될 것 같다.
다섯째, 소장품의 내용과 배치. 총 3천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허술한 진열장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배정된 면적을 메우기 위해 불필요한 실물대 지형으로 어물어물 채워 버린 인상마저 짙다.
그럼에도 관리국 측은 유물보충을 일체 중단한 채 개관만을 서두르는 실정이다.
이상의 허다한 문제점들을 요약하면 행정적인 실적위주로 외형만 꾸며 놓으려는 데서 빚어지는 결과로 지적되고 있다. 한 문화재 위원은『민영의 민속촌을 가지고 흉볼게 아니라 오히려 더 치졸한 민속박물관이 돼 낮이 뜨겁다』고 말한다.
문화재 관리국의 속셈은 이 박물관을 독립된 기구로 발족시키기보다는 산하기관으로 두어 「자리」를 확보하자는 데 있을 뿐. 박물관을 운영할 재정과 요원이 확보돼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정부 당국에서는 기존의 국립박물관에 예속시킬 것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러나 그것이 잠정적인 편법은 될 수 있을지라도 끝내 민속박물관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기 십상이다.
새로운 박물관의 설치와 운영을 둘러싼 이 같은 말썽은 결국 우리나라에 박물관 법이 없기 때문. 특수한 시설과 성격을 띠는 박물관이 무계획하게 추진, 운영되는 폐단을 일소하기 위해서 외국에서는 이미 법으로써 요건을 제시 및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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