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특별재난 지역 검토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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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일대의 산불이 잡히면서 군 장병이 동원돼 복구작업이 시작 됐다. 용호리 주민과 장병들이 불을 피해 달아났던 소를 찾아 끌고가고 있다.양양=임현동 기자

하늘에서 내리꽂는 불덩이에 쑥대밭이 된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사천리.정암리.물갑리 등에서는 불길이 잡힌 6일 오전 불에 탄 집의 잔해들을 걷어내고 생업으로 돌아가려는 주민들의 몸부림이 시작됐다.

옆 마을 친척집에서 하루를 보낸 이권행(68)씨 부부는 새벽 동이 트자마자 밭으로 나갔다. 이제 막 순을 틔운 감자를 돌보기 위해서다. 불이 번진 외양간에서 송아지를 살리려다 쇠기둥에 긁힌 손가락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지만 병원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이씨는 "집도 세간도 다 불에 타고 없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친다"고 말했다.

5일 새벽과 6일 새벽 두 차례 불길에 포위됐던 양양읍 감곡리. 불길이 번질세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 지친 몸이지만 주민들은 동틀 무렵부터 부엌에 남아 있는 쌀 한 봉지, 감자 한 소쿠리를 챙겼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돈도 1만~2만원씩 걷었다. 마을회관에 피해 있는 노인들을 돕기 위해서다.

감곡리는 6가구가 전소되는 피해를 봤다. 대부분 물 뿌릴 기운도 없는 노인들이 살던 집이었다. 7년 전 아들이 암으로 죽고 혼자 살고 있다는 93세의 노덕신 할머니는 "불길을 보고 이제는 다 살았구나 싶었는데 옆집 김씨가 날 살려줬다"며 눈물을 훔쳤다.

재기를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 시작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재민에게는 아직 그럴 만한 여력조차 없다. 아들 집에서 밤을 새우고 집으로 돌아온 최규순(76.여)씨는 잿더미로 변한 집을 보자 눈물을 터뜨렸다. 최씨는 "감자씨도 다 타버려 심을 것도 없다"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7년 전 새로 지은 집을 잃은 감곡리 주민 박민자(67.여)씨는 "집 지을 때 빌린 빚도 다 못 갚았다"면서 "창고.경운기가 모두 불타 감자밭에 나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자원봉사자의 손길은 망연자실한 이재민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산불이 발생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연인원 25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진화와 구호활동에 참여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등 구호단체들은 5일 밤 내내 피해 마을을 돌며 라면과 주먹밥.생수 등을 전달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6일 "이번 강원 산불 지역을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해 피해농가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가능케 해달라"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건의를 받은 뒤 "정부에서 적극 검토를 바란다"고 이해찬 총리에게 지시했다.

또 국방부는 피해를 본 강원도 고성.양양군 지역에 대해 징병검사와 징집.소집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피해 사실이 인정된 예비군도 훈련이 면제된다.

양양=특별취재팀, 최훈.채병건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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