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마인드풀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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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직 존재하는 건 현재… 당신은 아름다운 정원을 걷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도 잠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이 지나면 다시 이전의 생각이나 일에 몰두하고 만다. 마음을 빼앗긴 당신은 바람난 남편과 같다. 애인만 생각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무시하는 남편과 뭐가 다른가….

방한 중인 베트남 고승 틱낫한은 최근 낸 단행본 '힘'(명진출판)에서 뭔가에 집착해 눈앞의 행복을 보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또 바람난 마음을 현재로 돌아오게 해주는 힘이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깨어 있기)라고 설파한다.

사실 스님의 사상은 새로운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주목하는 것은 난해한 불교의 가르침을 술술 풀어내면서 호흡.걷기 같은 일상적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그의 중심사상 중 하나인 마인드풀니스 역시 서구인에게 부처의 말씀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쓴 단어다. 불가에선 이를 정념(正念)이라고 한다.

원시불교 경전인 '아함경'에는 팔정도(八正道)가 나온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여덟가지 길을 말한다. 정견(正見).정사(正思).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근(正勤).정정(正定)과 함께 똑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정념(正念)이 그것이다.

남방 불교에선 신(身).수(受).심(心).법(法) 등 네 가지 정념 수행법인 사념처(四念處)가 있으며, 넷 중 하나만 성취해도 '아라한과'(阿羅漢果.성인의 경지)에 이른다고 가르친다.

몸의 자세와 신체기관을 자세히 살피어 탐욕을 물리치는 것이 '신'념처(身念處)다. 틱낫한은 이 중 자신의 숨을 자각하면서 깊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쉬는 호흡을 되풀이하거나, 땅에 닿고 있음을 느끼면서 천천히 걷는 등의 간단한 방법으로 현재[今]에 마음[心]을 머물게 하는 '념(念)'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틱낫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덕도 있지만 스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각박한 현실을 어루만져 주는 약손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화낼 일 많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요즘, 시인 김남조님의 '정념의 기(旗)'를 읊조리며 틱낫한처럼 가볍게 산사(山寺)의 오솔길을 걸어보자. 무거운 비애가/맑게 가라앉은/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

이규연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