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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 앞날에 암영 잇단 노장선수 퇴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동남아 「아시아」 축구계의 최장신인 김재한 선수(29·주택은·190 ㎝)가 박이천 선수(29·국민은)에 이어 대표선수가 되더라도 이를 사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은 그를 아끼는 「팬」들을 놀라게 하고있다.
김재한은 작년 12월의 태국「킹즈·컵」 대회에 출전했다가 오른쪽 무릎을 골절 당해 지난 6일에야 「기프스」를 떼고 현재는 연습장에 나타나 동료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입장. 그는 32명의 국가대표선수가 발표됐던 지난 11일까지만 해도 다리가 회복되면 대표선수로 다시 뛰고싶다고 말했었다.
이같이 열의에 찼던 그가 갑자기 변심케 된 이유는 김재한 뿐만 아니라 박이천 등 모든 노장선수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
박이천 선수만 해도 대표은퇴의 사유를 시내K고교의 「코치」로 가기 때문이라 말하고있지만 그 저의는 노장으로서의 서글픈 말로를 당하지 않고 일찌기 사퇴해 버려 제 갈 길을 가야하겠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하겠다.
김재한도 대표선수로는 72년에 첫선을 보였으니까 신진이라 하겠지만 29세의 연령은 한국에서는 노장급에 속한다. 또 그는 자기「팀」의 「코치」였던 문병대씨만이 그의 진가를 알아주었을 뿐 다른 「코칭·스탭」으로부터는 소외당했던 슬픈 경험을 지니고있다.
그러던 차에 32명의 대표후보 중에는 이회택 박영태 최재모 정규각 등이 제외돼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그나마 선발됐던 박이천이 사퇴하자 그는 대표후보에 오르기도 전에 선수생활을 청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축구의 노장선수들은 농구의 김영일·박한 등 대표선수들이 화려한 은퇴식 속에 「코트」를 떠날 때마다 아쉬움과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아쉽고 급할 때는 기용했다가 버릴 때는 은퇴식은 커녕 누명마저 씌우는 축구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듯.
어떻든 이 같은 축구협회의 일관성 없는 선발행정으로 26세 이상이 되면 노장취급을 받았고 한번 노장이 되면 언제 선발됐다가도 불명예 속에 탈락될지 모르게 된 것이 축구계의 악순환 같은 풍토가 돼버렸다.
또 대표 노장들의 빠른 탈락은 실업「팀」에도 파급되어 병역을 마치고 돌아와 이제 막 눈이 띄어 「플레이」를 할 중견선수들이 의욕을 잃고 현역에서 사퇴하겠다고 고집, 「팀」의 소속마저도 위태롭게 하고있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김재한·박이천 등을 비롯해 이 같은 일련의 빠른 사퇴들은 협회가 일관성 없고 뚜렷한 안목이 없이 그때 그때의 축구행정을 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니 자업자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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