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한 섬유 수입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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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섬유업계 일부는 불황극복책의 하나로 한국산 섬유제품의 대일 수입규제를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섬유 제품 수입을 규제한다면 일본산 섬유의 재고누증을 막을 수 있고 경기를 북돋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섬유업계 일부의 단견에 입각한 지나친「에고이즘」의 발로임을 가릴 수가 없다.
우선 그것은 일본의 섬유무역이 적자 아닌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고, 또 그러한 무역흑자 업계가 경쟁품의 수입을 규제하는 날이면 한국·대만·「홍콩」등 이웃 나라들의 섬유업계에 대해서는 물론 섬유류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이들 나라들의 경제전체에 대해서도 큰 타격을 주면서 그 대가로 국내의「인플레」를 조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할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본 통산성이 집계한 일본의 섬유 무역수지는 수출이 40억「달러」, 수입이 36억3천만「달러」로 결국 3억7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던 것이다. 더우기 이것은 6억2천만「달러」의 적자를 낸 73년과 비교하면 일본 섬유무역의 수지가 악화는 커녕 도리어 크게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므로 일본 섬유업계의 요구는 그야말로 이기적인 것이며 근린 궁핍화를 강요하는 처사라 하여 좋을 것이다.
다행히도 일본 국내에서도 섬유업계 일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솔직이 그 단견임을 지적하는 여론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일본이 만약 섬유 수입을 규제하면 그렇지 않아도 수출부진에 허덕이는 한국·대만·「홍콩」등 섬유 수출국들이 입는 타격은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대일 감정이 악화하여 일본제품의 수입에 대한 보복조치가 취해질 것이므로 이것은 일본의 국익에도 반한다는 까닭에서이다.
사실 일본 섬유업계의 요구와 주장은 오늘날의 국제 경제 사회에서는 어디서도 통용될 수 없는 협량의 보호주의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일본의 총체적 무역수지는 흑자누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의 대일 무역은 73년에 4억8천만「달러」의 적자였던 것이 지난해에는 10억「달러」이상의 적자폭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흑자국인 일본이 대한 무역의 수지균형화를 위해 오히려 수입촉진을 꾀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업계가 어느 한 특정품목이 일시적 불황을 빙자하여 수입규제까지 해야 한다고 들고 나오는 것은 도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우기 경쟁품의 수입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산업은 다름 아닌 사양산업이며 국제 분업상 개도국에 넘겨주어야 하는 산업이다. 그러한 산업을 일본이 더 이상 움켜쥐고 있어야 할 가치도 없는 것이나. 따라서 이들 산업은 비록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있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경쟁품의 수입규제를 꾀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일본정부도 섬유업계의 이 같은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다만 일본 섬유업계가 보여준 이와 같은 보호주의적 움직임이 일본 산업의 전통적인 기업풍토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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