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이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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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옥문이 활짝 열렸다. 사실은「활짝」은 아니다. 옥문이 좁아 함께 풀려나올 가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다.
그래도「활짝」열렸다고 말하는 게 듣기도 좋다. 어쨌든 그만하면「활짝」열렸다고 볼 수도 있다. 「활짝」열린 옥문 밖으로 풀려 나오는 젊은이들을 맞는 학우와 친구들은 만세를 불렀다.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풀려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함박 꽃 같은 웃음꽃이 피었다.
만세는 기쁠 때 부른다. 뭔가를 다짐하고 맹세할 때에도 만세를 부른다. 찬양할 때에도 부른다. 그러나 풀려 나온 학생들이 무슨 뜻에서 헹가래치며 만세를 불렀는지 알 것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사진에 찍힌 석방 학생들의 표정은 마냥 맑기만 했다. 조금도 죄를 저지른 사람의 비굴함 같은 것은 없었다. 사실은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전과자」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사극이 아니라 형 집행정지로 풀려 나온 것이다. 모든 게 백지화된 게 아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언제 또 다시 갇혀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들 중에 두부를 먹었다는 얘기가 별로 없다. 언제부터인지 옥문을 나오는 사람들은 두부를 먹는 버릇이 있다. 두부를 먹으면 다시는 옥살이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두부를 학생들은 먹지를 않았다. 먹이려 하지도 않았다. 두부 값이 비싸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풀어준 것만도 고맙지 않겠느냐고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기왕에 관용과 온정을 베풀 바에야 조금이라도 인색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꼭 1백원이 있어야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 사람에게는 1백원에서 한푼이 모자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기야 그에게 준 돈을 언제 받게 될지를 모른다. 그런 때에는 처음부터 받을 생각을 버리고 줘야 한다. 이런 게 참다운「온정」이다.
물론 단돈 한푼도 주지 않는 사람보다는 다만 50원이라도 주는 쪽이 너그럽지 않겠느냐는 풀이도 나온다. 50원만 줘도 적어도 1백원의 반만큼은 고맙게 여겨야 할게 아니냐는 이치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치만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아니다. 1백원이 아쉬운 사람에게는 50원의「온정」이 역겹게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1백원을 다 줄 수도 있는 사람이 50원만 내 놓을 때에는 그리 고맙게 여겨지지도 않을는지도 모른다.
우선은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때가 못 된다. 그저 용케 그 오랜 나날의 곤욕을 치르고 성한 몸으로 풀려 나왔다고 함께 기뻐할 때다. 이제부터는 그들을 곱게 쉬게 하고 우리가 내일을 생각해야 할 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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