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이후를 전망하는 본사정치부기자들의 좌담|앞으로의 정국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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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투표실시 전만 해도 국민의 관심이 저조했고 야당과 재야세력의 투표거부운동이 전개됐는데도 80%의 투표율을 보인 것은 조금 예상 밖이지요….
-야당에서는 이 현상을 행정력동원, 취로사업 등을 통한 자금살포, 투표동원, 선심공세 때문인 것으로 주장하지.
-그러나 야당이 편 투표거부운동자체가 실효를 거두기가 어려웠다는 분석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신민당 자체 안에서도 반대표를 찍겠다는 사람에게 기권운동을 벌일 수 있느냐는 반론이 많았다고 유치송 사무총장이 털어놓더군.

<야 투쟁 계속되면 정국경직>
-이번 투표는 행정부 주도로 이뤄진 것이 사실이에요. 광주 같은 데서는 일요일인 지난 9일 상오8시부터 국민학교 교사들이 취학통지서를 돌린답시고 가정방문을 다니더군. 부산서구의 한 개표구에선 투표일 상오11시30분에 벌써 1백% 투표가 끝났어요. 야당이 조직적인 거부활동을 벌인 것은 이번이 투표사상 처음이었고 정당사에 있어서 한 시험「케이스」였는데 결국 실패한 것 아닌가 싶어요.
-우리와 같은 민도 아래서는 투표에 적극 참여해 반대활동을 벌임으로써 활로를 찾아야지 거부하는 방법으로는 효과가 적다는 얘기 같아요.
-그러나 현재와 같은 법 테두리 안에서 야당에 허용된 행동은 소극적인 거부활동 밖에는 없지 않았을까? 또 야당의 거부는 단순히 투 개표에 영향을 미치자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개헌운동추진에 있어서 하나의 포석으로도 해석되어야 할거고….
-이번 국민투표에는 돈이 많이 쓰여졌을까?
-신민당이 주장하는 투표비용 1천억 원의 내용은 각종 취로사업비 7백98억원과 선관위예산 15억원 외에 공무원들의 출장, 선심비용, 여당의원들의 귀향활동에 쓰여진 돈 전체를 어림한 것 같더군요. 취로사업은 정부예산사업이니까 투표자금으로 꼬집기는 좀 어려운 점도 있을 거예요.
-이번 국민투표실시목적이 개헌논의로 분열된 국론을 통일하자는 것이었는데 과연 투표결과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 것인지, 아니면 후유증이 나타날지가 중요한 관심사야.
야당과 재야세력이 국민투표결과에 승복한다면 일은 간단하지만 계속 강경 부정으로 나선다면 기상관측이 어려워 져요….
-김종필 국무총리는『정당한 절차에 의해 결론이 나면 그에 승복해야지 입으로만 민주를 외친다면 그것은 민주가 아니다』고 했어요. 그러나 야당은 정당한 절차가 없었으므로 승복을 거부하겠다는 거 아냐?
-정부의 한 실력자는 야당이 합헌 적 테두리 안에서 할말을 내세우면 정부도 합헌 적 테두리 안에서 대답하겠지만 야당이 비 합헌 적 투쟁을 계속하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사회혼란이 발생하면 모든 게 끝장이 날것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는 개인적인 전망이라는 전제를 붙여『제2의「4·19」가 오기 전에 제2의「5·16」이 먼저 올 것』이라고 매우 함축성 있는 말을 했어요.
-정부-여당 쪽에서는 후유증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유화책이 나오리라고 점치는 사람도 있어요.
-정부 실력자의 얘기로는 유화책도 여건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얘기야. 다시 말해 투표결과에 승복할 때에는 새로운 정국의 전기가 마련돼「누이 좋고 매부 좋은」형국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더군.
-그러나 당장 무슨 변화는 없을 거예요. 김종필 국무총리도『정부가 투표가 끝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더군.

<강·온 정책에 상반된 견해>
-야당 측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아. 김 신민 총재나 재야인사들은 이번 투표를 정부-여당이 쓸 수 있는「라스트·카드」라는 거지. 따라서 앞으로 더 이상 몰리게 되면 물리적 힘을 사용해야하는 강경책밖에는 쓸게 없다는 추측들이야.
-국민투표기간 중 검찰에서는 일부 재야인사와 야당의 투표거부운동이 위법이라고 규정했는데 입건은 하지 않았지요. 앞으로 이를 어떻게 마무리짓는 게 아닐지 주목되기도 합니다. 만일 극한적으로 국민투표결과를 부인한다면 국민투표 법 위반을 추후에라도 입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특정인의 정치활동이 제약되는가 하면 정국전반은 좀 굳어져 버리겠지요.
-그러나 일단은 유화정책으로 나올 것으로 봐도 틀리지 않겠지. 정부-여당은 부의 균 점을 주요 골자로 하는 몇 가지 획기적인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는 설도 있고 어느 정부고위관리는 사회복지정책의 과감한 실현을 비치더군.
-투표가 끝나면 정부-여당의 요직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설이 끈질기게 나돌았는데….
-대통령이 국민의 재 신임을 받았으니 일단은 내각과 여당이 일괄 사표를 내는 것으로 봐야지. 그런 게 관례 아닐까?
-그러나 그것도 여건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지요. 투표 후 혼란이 야기될 때 일괄사표다, 재 신임이다 하면 오히려 혼란을 더 가속시킬 우려가 있다는 거지.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라도 사표를 내는 절차는 있다고 봐야지요.
-사표를 제출하더라도 대폭개편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들이야.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거지. 중요한 시기인 3, 4월이 닥쳐있고 유정회 의원과 국회간부의 임기가 l년쯤 남았으니까-. 대폭 개편은 이들 임기가 끝나는 내년 2월께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지-.
-국회의장·국무총리·공화당 의장이 바뀌지 않는 요직개편은 사실 의미가 없을 거예요. 지난 연말부터 정가·관가 주변에서는 구체적인 하마 평까지 나돌았잖아. 예컨대 대학가의 K·L 모씨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최근에는 물러나 있는 P씨 등의「톨·백」설도 나와 있잖아?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는 얘기들인 것 같지만….
-어느 여당간부는 이렇게 말하더군. 지금 당직을 개편하자면 당의장이 포함돼야 하는데 현재의 여건으로는 이효상 현 당의장 서리·김 총리·정 의장 중 어느 누구도 움직이기 어렵다고.
-그러나 난국수습을 위한 개편 설은 꽤 구체적으로까지 돌고 있어요.

<대복 개편은 내년 2월께?>
일부에서는 박대통령이 공화당 총재직을 내놓을 가능성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잖아. 72년 10·17 직후에도 그와 비슷한 얘기가 나돌다가 결국 박대통령이 겸임했지만….
-개편문제는 박대통령의 정책구상이나 시국수습방안과 함수관계를 갖는 문제인데…「신장개업」이라고 할까… 분위기 일신을 위해 얼굴을 바꾸는 개편은 대폭이든 소폭이든 일단 있다고 봐야겠지-.
-야당 가에는 무슨 변화가 없을까.
-신민당에는 김 총재의 강경 노선과 많은 의원들의 소극노선이 갈려져 있지만 다른 큰 변화가 없는 한 김 총재의 지도노선이 불만 속에서도 견지돼 나간다고 봐야지.
-여당 쪽에서는 투표 후 김 총재의 지도력이 약화될 걸로 보는 것 같더군. 투표에 임한 김 총재의 지도노선이 결과적으로 실패되었다는 성토가 야당 안에서 일어나리라는 얘기지.
-이번 투표과정에서 김대중씨의 존재가 부상한 느낌이야.
야당 안에서 총재에 대한 불평은 있겠지만 분당이나 총재 사퇴요구 등 극단적인 상황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많은 야당 사람들은 어느 때가 되면 결국 두 김씨 중 누구를 택일해야할 상황이 오고 그때 가서 김 총재가 당내에서 마저 지지를 못 받으면 곤란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김 총재로서는 그런 점에서 집안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봐야지요
-지금 재야에는 신민·통일 당과 국민회의·김대중씨 등이 개헌투쟁을 내걸고 있는데 앞으로 이들간에 범 야단일정당론이 대두할 가능성은 없을까.
어려울 거예요. 우선 신민당이 도사리고 국민회의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성직자들이 정당을 할 것 같지 않거든. 얼마 전 박준규 공화당 정책위의장이 재야인사들을 겨냥해 정치를 하려면 기독교 민주당이든 사회당이든 정당을 만들어 나서라고 말한 일도 있고 또 일각에선 신당 설도 돌았는데 신당 설이나 정계개편 논이 아직은 모두 막연한 얘기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잖아요?

<정당활동 다소 활성화 될 듯>
-여당에서 이런 얘기는 있더군. 앞으로 정치자금도 좀 여유 있게 돌고 정당활동도 보다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 말이야. 여당은 앞으로도 야당이 개헌주장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정치문제는 국회 안에서 논의하자는 거지요.
그렇다면「개헌」두 자를 축으로 극한 대립을 보인 작년 10월 이래의 정국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많지요.
-다른 변화가 없는 한 야당은 원내 외 개헌투쟁을 계속 벌일 것이고 여당은 야당에 투쟁무대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국회소집을 기피하는 자세로 나오기 쉬울 거야. 또 종교계와 학원문제도 있고 하니까 정당 적 차원만이 아니라 정당외적사정도 계산에 넣어야 할겁니다.
-분위기가 달라질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아요. 우선 유신체제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에 대한 정부의 보답으로도 무언가 과감한 조치가 나올 수도 있지요. 구속 자 석방이라든지 그밖에 사회부조리에 대한 과감한 조치 등도 따를 수 있다고 보면 정국의 분위기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낙관론 같지만….
-결국 신민당을 포함한 재야세력이 나갈 길은 뻔하니까 정국의 양상은 앞으로의 정부조처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겠군. 말하자면 정부가 재야의 체제도전을 강경책으로 대응하느냐, 유화책으로 맞서느냐에 정국의 기상이 달라지겠지. 그밖에 참신한 경제조치 등으로 정부가 국민의 신뢰와 공신력을 얼마나 더 많이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제와 재야의 내부 전열이 어느 정도 정비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정국기상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겠지.

<참석자>
▲부장 심상기
▲차장 양태조 심준섭
▲기자 조남조 성병욱 신용우 송진혁 고흥길 고정웅 한남규 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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