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국제「라운드」의 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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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통화무역질서가 크게 교란됨으로써 자유무역의 이상과 현실은 73년 이후 크게 괴리되어왔다. 73년9월에 열렸던 GATT 동경총회는 이른바 신 국제「라운드」원칙에 합의하고 이어서 실무협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73년 말「아랍」측의 석유금수조치와 그에 뒤이은 자원파동으로 말미암아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통화무역상의 혼란을 거듭했고, 결국 모든 나라가「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이중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평가절하의 반복과 보호주의적 색채의 심화는 GATT 협상의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악화시켜, 신 국제「라운드」협상은 유명무실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또 GATT 협상의 실질적인 주도 역이라 할 미국은「워터게이트」사건을 계기로 행정부와 의회가 절망적인 대립관계에 빠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GATT협상에 강력히 대응할 수 있는 법적 뒷받침을 미국행정부가 갖지 못했던 것이다.
협상주역인 미국의 처지와 국제경제상의 혼란 때문에 미루어 오던 신 국제「라운드」협상은 그러나 미국의 신통상법이 74년 말 성립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즉 미국의 신통상법이 발효됨으로써 신 국제「라운드」의 성립을 저해하던 조건의 하나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또 오늘의 세계경제는 각 국의「스태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실업률의 증대와 무역량의 상대적 정체에서 오는 모순 등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무역신장을 위한 상호협조의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한 협상은 어쨌든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며, 그 때문에 GATT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미국·EEC, 그리고 일본이 73년 동경선언을 이제부터라도 추진해보자고 시도하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GATT협상의 장래는 미국의 신통상법의 내용이 시사하는바와 같이 본질적으로 미국·EEC·일본이라는 3대「블록」간의 조정을 뜻할 뿐, 이른바 개발도상국문제는 주요관심사 밖의 것이 될 공산이 더욱 짙다는 것을 주시해야한다.
우선 미국의 신통상법은 미국과 EEC의 무역량이 세계무역량의 80%이상을 점하는 품목의 경우 관세율을 대폭 인하하거나 폐지하자고 함으로써 이번 협상의 초점이 선진공업국간의 교역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국의 신통상법은 일반특혜관세제도에서 교란품목으로서 개발도상국의 주요수출품인 의류·시계 류·전자제품·철강제품·신발류·유리제품 등을 특혜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 미국의 수입품 중 50% 이상을 단일국가에서 수입하는 상품이나 연간 2천5백만「달러」를 초과하는 수입상품은 GNP성장률 한도 안에서만 특혜를 부여키로 함으로써 개발도상국의 특화산업화를 근원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그밖에도 미국의 신통상법은 각종의 보호조항을 광범하게 설정함으로써 적당한 구실만 있으면 언제든지 무역을 제한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므로 미국의 협상자세는 양면의 칼을 휘두르는 격이다.
GATT 협상의 주역이라 할 미국의 신통상법이 이처럼 협상의 초점을 대 EEC무역에 맞추고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냉혹한 제한조치를 강화시키고 있으므로 GATT협상에 대해서 우리로서는 크게 기대할 것이 못된다. 오히려 개발도상국의 단체교섭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선진제국의 협상자세를 수정시키는 압력에 우리도 기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약간이나마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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