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을 일의 전부로 알지 마라|국립현대미술관 운영을 중심으로 미술행정에 관한 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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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4월부터 전시실의 대여범위를 개인에게까지 확대하는 한편 대관료를 받는다고 최근 발표했다. 미술관이 이같이 대관 업무만 넓혀감에 따라 미술계에서는 『미술관이 당장 해나가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외면한 채 장사에 나서고 있다』고 비난, 미술관정책의 졸렬함과 무계획성을 지적하고 있다.
단하나 밖에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실의 대여 범위를 확대하는 이유는『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순수미술 작품의 전시』를 위한 것이라 하며, 종래 특별한 단체에 한하던 제한을 풀어 작가의 개인전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따로 대관규정을 만들어 대관료를 징수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미술관이 이같이 순수미술의 발표기회를 폭 넓혀 주겠다는 것은 명목상의 구실. 단체도 제한을 두어 대여하다 보니 전시실(특히 서관)이 많이 비게 되므로『기왕 놀릴 바에는 수요자 부담으로 해서 활용하자』는 데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동안 단체에 대여한 결과 전구의 개체·실내 청소 등이 늘 문제돼 미술관측과 사용자사이에 잡음이 일곤 했는데 그것을 현실화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미술관이 대관료를 받는다는 점에만 미술계의 반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국립기관의 대관료 징수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산과 인원이 부족한 미술관 형편으로는 일일이 기획전을 열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미대 임영방 박사는『미술관을 대여공간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야말로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는「난센스」다. 근년 정부가 미술계에 뿌리는 돈을 보면 결코 재원이 없다고 할 수가 없다. 설사 예산이 부족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진장이다』고 일축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창설된 지 5년간의 실적이란 작품 수십 점을 모았고 또 한국미술 60년 전 등 몇 개의 기획전을 가졌을 뿐 요원양성이나 자료수집·연구사업 및 대외활동 등은 전혀 못하는 실정이다.
또 미술관은 금년부터 4개의 국전을 각각 시기를 달리해 개최할 것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만약 미술관이 4개의 국전을 맡아 하게된다면 결국 국전 치르는 업무와 대관사업으로 일관하게된다.
사실 국전이나 대관사업은 미술관의 실치 목적과 아무 상관없는 일. 홍대 이경성 박물관장은『국립미술관의 지금 형편에서 겨우 할 일이라고 찾아낸 게 대관이라면 한심하다』고 비난하면서 올바르게 발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미술평론가 이귀열씨는『금년에 예산을 좀더 마련했다고 하지만 시급한 작품구입 비는 5백만원에 불과해 작품 2, 3점밖에 못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안 되는 그 예산마저 대부분을 집 고치고「라이트」바꾸고「카피트」까는 등에 소비한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처사』라고 지탄한다.
미술관의 난제는 그런 피상적인 겉치레 사업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데서부터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고 미술계의 제언을 집약해보면 전시효과만을 위한 미술행정을 지양하고 한 나라의 미술을 발전시키는「센터」로서의 틀을 잡아야 한다는데 있다.
첫째, 미술관의 가장 주요한 사명은 좋은 작품의 수집·전시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수집된 내용에 대하여 좋은 평판이 아니다. 반드시 예산부족 때문이 아니라 미온적이고 적당히 점수 채우기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둘째는 요원의 학보와 양성이다. 현재 미술관에는 정식 운영 회조차 구성돼 있지 않으며 1명의「큐레터」도 없다. 딴 데서 특채도 못할뿐더러 자체요원의 양성계획도 없다. 미술관의 운영·전시계획·작품의 보존, 수리 등 전문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는 기구임에도 이들을 길러낼 아무런 구상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습도계도 없는 지하창고에서 작품이 안 썩는지 걱정』이라고도 말한다.
셋째는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이다. 미술강좌라든가, 도시와 환경에서 생기는 미적인 문제의 토의, 젊은이들의 미술활동에 대한 유도와 공개, 시민의 유치 등 예산이 없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물론 이러한 사업들은 현저히 눈에 띄는 실적이 못되기 때문에 현 체제에선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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