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아들 친구 때문에? … 13년 만에 붙잡힌 마약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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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세계 최대 마약왕’으로 불리는 멕시코의 호아킨 구스만이 22일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헬기로 이동하고 있다. [멕시코시티 AP=뉴시스, 세라핀 삼바다 트위터 캡처]

미국 ‘공공의 적 1호’가 붙잡혔다. 미 마약단속국과 멕시코 해병대는 22일(현지시간) 합동 작전을 벌여 호아킨 ‘엘 차포’ 구스만 로에라(56)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엘 차포’는 스페인어로 키 작은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구스만은 적어도 미국 사법당국엔 거인 중의 거인이었다. 1990년대 후반 멕시코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2001년 1월 세탁물 호송 차량에 숨어 탈주한 그는 이후 13년간 미국을 괴롭혀왔다.

 멕시코 최대 마약 범죄 카르텔인 시날로아 갱단을 이끈 구스만은 LA·시카고 등 미 전역에 마약 공급망을 구축했다. 그의 마약 공급망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호주까지 뻗쳐 세계의 마약왕으로 군림했다. 미 사법부는 미국에 코카인·헤로인 등을 확산시킨 혐의로 무려 500만 달러(약 53억원)의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시카고 경찰은 구스만을 1920년대 알 카포네 이후 처음으로 ‘공공의 적 1호’로 공식 명명했다.

 그런 만큼 그의 체포 소식은 미국에 큰 뉴스였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구스만으로 인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마약 중독, 폭력, 부패 등으로 삶이 파괴됐다”며 “그를 체포했다는 소식은 멕시코와 미국 국민의 승리”라는 긴급 성명까지 발표했다.

구스만이 체포된 데는 마약 조직의 부두목 이스마엘 삼바다의 아들 세라핀이 올린 트위터 사진들이 단서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세라핀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 왼쪽 돈 다발 사진과 사진 오른쪽 금 도금 칼리시니코프 소총 사진. [멕시코시티 AP=뉴시스, 세라핀 삼바다 트위터 캡처]

 무리요 카람 멕시코 법무장관은 멕시코 해병대가 이날 오전 6시40분쯤 태평양 연안의 마자틀란 리조트에서 구스만을 체포해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교도소에 수감했다고 밝혔다. 미 언론들은 구스만이 한 여성과 함께 리조트에 있다가 붙잡혔으며, 체포 과정에서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었다고 전했다. CNN 등 방송들은 구스만 체포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는 소식에 버금가는 큰 사건이라고도 보도했다.

 13년 동안 미국과 멕시코 사법당국의 체포망을 피해 신출귀몰해온 구스만을 어떻게 체포했는지는 공표되지 않았다. 미 정부 관계자는 AP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구스만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신원을 밝힐 수 없는 갱단 내부 인물의 도움을 받았다고만 말했다.

 지난해 11월 22일 미 사법당국은 멕시코에서 미국 애리조나로 통하는 국경을 넘던 멕시코 청년을 체포한 일이 있다. 세라핀 삼바다 오리츠(23)라는 이름의 청년이었다. 수사관들은 삼바다의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을 뒤지다 ‘파티 중’이라는 글과 함께 금과 은으로 도금된 AK소총들, 마리화나가 담긴 수많은 지퍼백, 산더미 같은 멕시코 지폐 뭉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이 청년은 구스만이 이끄는 시날로아 갱단의 2인자 이스마엘 ‘엘 마요’ 삼바다의 아들이었다. 특히 구스만의 아들 알프레도와도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뒤 3개월 만에 구스만은 잡혔다. 구스만은 10억 달러(약 1조700억원) 이상의 재산을 모아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억만장자 명단에 올랐으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명단에서 프랑스 대통령을 앞선 적도 있다. 멕시코 정부는 구스만을 미국에 인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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