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이 애용하던 바둑판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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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경=박동순 특파원】고균 김옥균이 일본에서의 망명생활 때 애용해온 바둑판이 동경에서 발견되었다.
이 희귀한 진품의 소장자는 동경 「아사부」(마포)에 사는 「가네꼬」(김자륭삼·90) 씨.
「가네꼬」 씨는 김옥균의 망명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온 북해도 「오다루」(소준)의 큰 수산물도매상 「가네꼬· 모도사부로」(김자원삼낭)의 서양자로서 양부가 김옥균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 온 것이다.
이 바둑판은 세로1척4촌5분, 가로1척3촌8분의 비자나무로 만들어졌고 각 면의 결이 곧은데다 도료를 칠한 것이 아닌데도 갈색 윤기가 든다.
「가네꼬」 씨가 꺼내 보이는 「유래기」(1932년10월 김자원삼낭)에 따르면 이 바둑판은 일본 3대명반의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며 15대 본인방수열이 사용하던 것을 몇 사람의 손을 거친 끝에 17, 19대 본인방 수영의 소개에 의해 김옥균이 손에 넣은 것이다.
수영은 본인방이 되기 전 김옥균의 유배지였던 「오가사와라」(소립원) 섬과 북해도까지 찾아가 함께 머무른 일이 있는 김옥균의 지우.
김옥균은 이 바둑판만은 유배지를 전전하면서도 항상 신변에 두고 애용해왔는데 상해로 떠나기 전에 「가네꼬」(김자원삼낭)에게 다른 물건들과 함께 물려주었다. 「가네꼬」 씨는 「유래기」에서 『김이 상해로 가기 전에 내게 찾아와 덕분에 비용도 마련되고 해서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언젠가 다시 뜻을 얻으면 은혜를 갚을 생각이다. 혹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하니 소유품 전부를 기념으로 받아달라. 불행히도 타향에서 죽으면 유품으로 삼아달라』고 당부하면서 이 바둑판을 물려주고 떠났으며 후에 「이누가이·쓰요시」(견양의·1931년 일본수상) 등 여러 사람이 양도해 줄 것을 간청해왔으나 거절하고 지금껏 간직해왔다고 말했었다.
「이누가이」 수상은 이를 『천하의 진품』이라 했고 노·일 전쟁 때 이른바 『일본해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판한 「도오고」(동향평팔낭) 원수가 「은봉」이라 명명하기까지 했다. 당초 「가네꼬」 씨는 이 바둑판과 함께 일본의 명공철제가 십육나막상을 그려 넣은 바둑통도 물려받았으나 통은 없어지고 판만이 지금까지 간직되어 왔다는 것·
「가네꼬」씨는 또 김의 바둑이 잘지 않고 호방했으며 실력은 초단에선·2정도였다고 술회했다.
36년 당시 조선식산은행 이사로 취임, 4년 후 부두취로 승진하여 해방 때까지 약10년간 서울∼동경을 왕래하면서 근무했다는 「가네꼬」 씨는 『망부께서 생전에 자주 김의 얘기를 해줬다』고 회상하고, 58년12월10일 자택에서 당시의 본인방 수격(현 고천격 명예 본인방)·「하세가와」(장곡천장) 7단(현 명예8단)을 초청. 바둑판 피로모임을 가진 적도 있다면서 그 기념사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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