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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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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하늘에 별이 있고 땅 위에 꽃이 있고 우리의 가슴속에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시인「괴테」의 이 말을 나는 지극히 좋아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의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이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덕이요, 가장 자비로운 향기요, 가장 찬란한 빛이요, 가장 창조적인 힘이다.
20세기의 사랑의 천재를 들라면 나는 철학자요, 목사요, 음악가요 또 신학자였던「슈바이처」를 들겠다. 금년은 우리시대의 정신적 거성인「슈바이처」가 탄생한지 꼭 백년이 되는 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세계도처에서「슈바이처」의 선생을 축하하고 그의 서거를 슬퍼하는 여러 가지의 모임과 행사가 벌어진다.
우리 나라에서는「슈바이처」탄생 백주년의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또 지난 1월14일에는「슈바이처」에 관한 강연회가 있었고 그의 기록영화가 상영되었다.
나는 그날「슈바이처」사상의 핵심인 생명경외에 관한 강연을 하였다.「슈바이처」의 기록영화는 관중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생명은 존엄하고 신성하다. 이것이「슈바이처」의 사상의 근본이다.『무엇이 선이냐. 생명을 유지하고 촉진하는 것이다. 무엇이 악이냐. 생명을 손상시키고 파괴하는 것이다.』「슈바이처」는 단적으로 이렇게 외쳤다.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우리들 한 사람 한사람의 생명이다. 물건은 값을 매길 수 있고 시장에서 매매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값을 매기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존귀하다. 천상천하에 사람의 목숨처럼 값있고 귀한 것이 없다.
생명경시의 무서운 악이 현대를 휩쓸고 있다. 우리는 이 악과 싸워야한다. 전쟁이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폭력이 생명을 억압하고, 금력이 생명을 짓밟는다.「슈바이처」는 결코 인간의 생명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한 포기의 풀, 한 마리의 새도 다 하나님의 눈에서 볼 때에는 소중한 목숨이다. 그는 일체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윤리란 무엇이냐. 모든 생명에 대하여 무한한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슈바이처」의 윤리는 인간중심의 윤리가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에 확대된 윤리다.
「아프리카」의「람바레네」에 있는 그의 병원은 인류애의 보금자리요, 생명애의 안식처다. 흑인·백인·황인, 세계 도처의 뜻있는 의사와 간호원들이 그의 병원에 와서 일생동안 또는 몇 햇 동안 그를 헌신적으로 돕는다.
우리는 모두 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요, 자매들이다. 이것이「슈바이처」의 병원의 분위기다.「슈바이처」가 숲속을 걸어가면 원숭이·개·닭·고양이·오리·사슴들이 그의 뒤를 줄줄 따라간다. 모두 정다운 친구들이다. 모두 같은 생명의 식구들이다.
「슈바이처」의 책상 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늘 살고있다. 그가 편지를 쓸 때엔 고양이가 가까이 와서 방해를 한다.「슈바이처」는 조용히 고양이를 책상 밑에 내려놓는다. 얼마 후에 또 고양이가 원고지 위에 와 앉는다.「슈바이처」는 아까처럼 고양이를 책상 옆에 옮겨 놓는다. 그가 글을 쓰는 동안 이런 광경이 여러 번 되풀이된다.「슈바이처」와 그 고양이는 가까운 친구지간이다. 그 고양이는「슈바이처」의 책상 위에서 낳아 책장 위에서 산다고 한다.
「슈바이처」는 세계를 그의 집으로 삼고 인류를 그의 가족으로 생각한다. 사람만이 형제가 아니라 풀과 나무와 개와 사슴도 다 같은 정다운 생명의 식구들이다. 같은 생명들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자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슈바이처」에 의하면 모든 생명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동행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기쁨을 같이 나누고 슬픔을 같이 나누고 고생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봉사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체험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헌신하는 것이다.
『「휴머니즘」의 정신은 창조적 정신』이라고「슈바이처」는 강조한다.
사랑은「멘델스존」의「바이얼린」「콘체르토」의「멜러디」처럼 감미롭고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나긋나긋한 정서가 아니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창조적인 활동이다.
상대방의 슬픔과 고뇌와 기쁨에 동참하여 같이 슬퍼하고 같이 괴로워하고 같이 기뻐하는 것이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것이다.「슈바이처」에 의하면 사랑의 최고의 표현은 헌신적 봉사의 행동이다. 남을 위하여 나를 바치는 것이다.
그는 유복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한없이 행복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같은 학교의 같은 반의 친구들이 가난 속에서 불행하게 사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왜 나만이 행복해야하고 왜 그들은 불행해야 하는가. 나의 행복과 그들의 불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권리가 나에게 있는가.「슈바이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행복한 나는 불행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봉사를 해야한다. 그는 스무 살 난 젊은 시절에 일대결심을 품었다.『30세까지는 나의 학문과 예술을 위하여 살자. 그러나 30세 이후부터는 남을 위하여 봉사하면서 살자.』
타인을 위한 봉사의 생애를 살려는 결심이 그를 20세기의 성자로 만들었고 사랑의 사도로 만들었고「휴머니즘」의 용사로 만들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봉사를 해야 한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권력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헌신해야 한다.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도와야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 봉사는 스스로 원하여 남을 위해서 나의 시간을 바치고 정성을 쏟고 돈을 내고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봉사는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슈바이처」는 90년의 긴 생애를 봉사로 시작하여 봉사로 끝냈다. 그가 20세기의 성자라고 일컫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정신과 진리의 힘을 믿기 때문에 인류의 앞날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했다.
하늘에 찬란한 별이 빛나고, 땅위에 아름다운 꽃이 피고, 우리의 가슴속에 사랑의 태양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인생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생의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사랑은 인간의 위대한 힘이요, 빛이요, 덕이요, 향기다. 우리는 저마다 사랑의 태양이 되어 이 힘과 빛과 덕과 향기를 발해야 한다. 그것이 생의 깊은 의미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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