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수뇌 회견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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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정희 대통령의 14일 연두 회견을 앞뒤로 해서 신민·공화·통일당 수뇌들의 기자 회견이 이뤄졌다. 박 대통령의 회견은 연두교서를 대신하는 새해 정책 구상의 천명이어서 국민의 관심이 쏠려 왔고 이번 회견에서는 개헌 등 국내 정치 「이슈」에 대해 설득 「스타일」의 발언을 한 것이 특색.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개헌 등 당 노선을 밝혀 임전 자세를 분명히 했고, 양일동 통일 당수나 윤형중 민주 회복 국민회의 상임 대표는 체제 부정과 퇴진 요구 등 보다 강경한 투쟁 방향을 설정했다. 바른말인지 실언인지 분간 못할 발언으로 자주 물의를 일으켜 온 이효상 공화당 의장 서리는 73년 3월 취임 후 처음 가진 공식 회견에서조차 발언 말썽으로 물의를 자아냈다.

<서울선 밀감 나무 안돼>
박 대통령이 연두 회견에서 6개항의 질문 중 가장 역점을 두어 자신의 소신을 소상히 밝힌 것은 개헌 문제, 2시간 40분의 발언 중 48분을 할애한 것으로 보아도 그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지금도 목장 우유라든지 끓이지 않은 우유를 먹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릴 때 깡보리밥에 깍두기를 먹고 자란 뱃속이 되어서 그런지 배탈이 나고 설사가 난다.』
신변 얘기를 비유로 들면서 예화를 많이 한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 제도도 그 나라에서 자랄 수 있는 토양과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 비유가 바로 깡보리밥과 우유 얘기이고 『제주도 밀감 나무를 서울에 옮겨와도 살지 못한다』는 밀감 나무 얘기.

<자신이 회견 날짜 지정>
박 대통령은 한마디로 개헌 문제를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옛날 헌법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나라 망하는 길』이라고 말해 개헌 불가를 뚜렷이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구미 대교 준공식에 참석한 후 다음날인 11일 회견 날짜를 14일로 확정. 그러나 준공식 때 추위 때문에 얻은 감기로 주치의는 회견을 늦추도록 진언했으나『지연시킬 수 없다』고 예정대로 회견을 강행했다는 측근의 얘기다.
예년에는 회견 날짜를 3가지 정도로 잡아 올려 왔으나 금년에는 박 대통령 자신이 확정했다는 것이 특징.
박 대통령 회견 다음날인 15일 회견을 가진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회견문은 당초 당정책 소위에서 83장으로 만들어졌으나 김 총재가 양이 너무 많다 해서 2백자 원고지 52장으로 압축됐다.

<회견 내용 분야별 배정>
정책소위는 이중재 정책심의위 의장 주재로 두 차례 회의를 열어 ▲안보 및 남북대화 문제=송원영 ▲경제 문제=이중재·진의종 ▲헌법 및 체제 문제=김인기 ▲언론·인권 문제=이택돈 의원 등으로 회견 내용을 분야별로 배정, 작성케 한 후 이를 이 의장이 다시 종합했다.
그후 14일의 박 대통령 회견을 보고 김 총재와 이택돈 대변인은 원고를 4군데나 수정해 14일 하오 광화문에 있는 김 총재의 개인 사무실에 필경사를 불러 유인.

<안보문제 후퇴 인상도>
회견문 작성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당 소속의원들은 김 총재와 정책소위 원들에게「아이디어」를 제공.
고흥문 정무회의 부의장은 김 총재에게 『일부에서는 김 총재의 안보관을 거두절미하여 「절대 남침 우려 없다」고 하고 있는데 이렇게 알려지면 가령 미 군원도 필요없게 된다는 말로도 들릴 수 있으니 「절대」라는 말은 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 그의 이런 말은 김 총재에 의해 받아들여져 『나는 결코 북한에 공산 정권이 있는 이상 남침 위협이 근본적으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반영되었다.
김원만 의원 같은 이도 『정부와 야당 중 누가 더 이적행위를 하는가』에 관해 통박하는 내용을 포함시켜 달라고 이 대변인에게 요청.
정책소위는 김 총재와 미리 상의한 후 회견의 역점을 ▲김 총재의 안보관에 대한 충분한 설명 ▲경제 난국에 대한 대안 등에 두고 헌법·체제 문제·부패 문제 등은 『그만하면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됐으니 이쯤 하자』고 하여 넘겼다는 것.
총재 회견을 놓고 당내에서는 『대체로 내용이 부드러웠다』는 평이 많았고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종전에 비해 후퇴한 게 아니냐』는 이론도 나왔다.

<귀엣말 듣고 정정 발언>
이효상 공화당 의장 서리의 16일 연두 회견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회견을 뒤쫓은 추격 회견이었다는 관측.
김 총재 회견이 시작된 바로 그 시각에 이 당의장은 박준규 정책위의장·김용태 총무·신형식 당무위원·이해원 대변인 등 간부들과 함께 미리 인수한 회견문 내용을 검토했고 이 자리서 대응 회견을 갖기로 결정했던 것.
회견 일자도 16일로 정해 즉석에서 회견 내용을 준비해 이 대변인은 이 문안을 밤새워 손질한 뒤 당무 회의에 올렸다.
이 당의장 서리의 회견에서 문제된 부분은 언론 문제, 이 당의장은 언론 기관에 대한 무더기 광고 해약 사태를 묻자 『언론이 정부의 비위에 거슬리는 점이 있었지 않았나 추측된다』면서 『정부가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생각해 보고 대처해 보다가 결국 안되니까 마지막으로 이런 방법을 택했는지는 모르겠으나…』라고 문제 발언을 했다.
『정부 비위에 거슬린다고 광고 해약을 시키는 것이 옮은 일이냐』고 다시 보충 질문을 하자 채영철 비서실장의 귀엣말을 들은 이 당의장은 처음 발언과는 다르게 『광고 문제는 광고주와 언론의 문제』라고 정정 발언.
발언이 문제되자 박 정책위 의장은 보충 설명을 했고 이 보충 발언으로도 부족했던지 당 간부들은 다시 회동한 뒤 『당의장의 회견 내용이 본인 개인의 사적인 추측을 즉석에서 말한 데 불과하다』는 해명 발언을 당의장 명의로 발표.

<실언 예방 답변 대책도>
이 당의장 서리의 회견에 앞선 16일 아침의 공화당 당무회의는 이 의장의 실언(?)을 예방하기 위해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대책까지 논의.
회견 유인물을 당무위원들에게 모두 배포한 다음 이 의장은 그 내용을 낭독했고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는 절대 말려들지 않도록 몇몇 당무위원들은 주의 발언을 했다는 것.
광고 해약 사태에 대해서는 이 당의장이 『정부를 끌어들여서는 안되지…』라고 어느 간부에게도 말한 일도 있어 마음들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
이 의장 회견을 놓고 박 정책위의장은 『회견이 대성공이 아니냐…』고 했지만 어느 당무위원은 『이 의장이 물의 발언을 해서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평가. 한 정부 고위 관리는『이 의장이 연로한 분이 되어서 그런지…큰일』이라고 함축성 있는 말로 마땅찮은 논평을 했다.
한편 11일 있었던 양일동 통일당 당수의 회견에서는 『××정권』이라는 초강경 표현이 나와 기자들은 『양 당수 자신 유신체제 하에서 출마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질문. 양 당수는 이에 대해 『일제하에서도 생존은 했던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답변. 그러자 유택경 대변인은 『유신체제를 감시·비판하기 위해 출마한 것』이라고 보충 답변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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