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연극의 현대적 수용|ITI 심포지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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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제 극예술 협회 (ITI) 한국 본부는 17일 하오 3시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전통 연극의 현대적 수용』이라는 주제 아래 「심포지엄」을 갖는다. 탈놀음·인형놀음·판소리·굿 등 한국 고유의 전통 연극을 요즘 우리 연극계의 가장 큰 과제인 민족 연극의 수립에 어떻게 이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 재기와 방향의 모색에 뜻을 두고 있다.
소원되어 왔던 무당의 굿을 전통 연극 속에 포함시켜 실체와 독창성을 파악한 뒤 원형 보존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재창조를 거쳐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주제 발표는 김열규 교수 (서강대·『제의적 연극의 성격에 대한 몇가지 생각』, 심우성씨 (민속학·『전통 연극의 현대적 수용』), 허규씨 (연출가·『한국 전통극의 현대극에의 접립 시도와 과제, 오태석씨 (작가·『작가로서의 한 시도)가 맡는다. 이중 김 교수와 오씨의 논문을 요약해 싣는다.

<작가로서의 한 시도>전통극의 운율과 상소리|현대극에서도 활용 가능|오태석 작가
「마틴·에슬린」은 현대의 몇 극작가들이 지닌 공통 요소로 언어의 평가 절하 내지 해체「플로트」의 붕괴·역 창조의 와해, 그리고 종래 「드라머」의 정석처럼 돼 왔던 줄거리의 최종 매듭이 그만 붕괴된 점등을 꼽는다.
현대 연극의 흐름을 규정한 이 지적에서 신극 60년 동안 끊겨있던 전통 연극에 오히려 현대적인 요소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믈리에르」의 『「스카펭」의 간계』를 우리 나라의 민속극·판소리·고대 소설 등에 적용시켜 『쇠뚝이 놀이』로 꾸며보았던 내 경험은 한국 연극이 전통극을 어떻게 수용해야하는가에 대한 몇가지 문젯점을 제기시켰다.
첫째는 전통극에 나타나는 사설조의 시적 운율과 상소리를 빼내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신극 60년 동안 우리 연극은 산문적이 되어진 대신 관객과 겉도는 유희를 벌였다. 민중과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으로 이 두 요소를 활용해보면 현대극의 새 형식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한다.
둘째는 전통극에서처럼 주인공을 살리고 죽이는 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일 등을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연극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데 전통극에서는 샌님의 말 한마디로 미얄할미가 죽어가고 관객이 이를 사실로 받아들여 왔다. 현대극에서 이를 충분히 이용 못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세째 탈춤의 양반 과장·미얄 과장 등에서 볼 수 있는 갈등과 해결의 반복, 때맞춰 사용되는 춤과 노래 등의 구성 형식을 현대극에서 사용할 수 없을까 한다. 이 형식의 이용은 연극을 경제적으로 돕는 길이기도 하다.

<제의적 연극의 성격>전래의 탈춤·무당굿거리|전통 연극으로 소화돼야|김열규 <서강대 교수>
우리 나라에서 굿 혹은 제의를 놀이로 의식한 최초의 기록은 가낙 국기의 신성한 부분이다. 수로왕과 허비가 사망한 뒤, 이들을 사모해 백성들이 베푼 연회가 이 부분에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무당굿의 「거리」속에 「놀이」가 포함 되어 있고 별신 「굿」은 지방에 따라 「별신놀이」라고도 불러진다. 「신난다」「신명난다」 등 말속에서의 「신」과 신은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런점 제의에서 놀아, 좁혀 말하면 연극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탈춤·굿거리 등의 한국 전통 연극 속에 나타나는 놀이의 특색은 현장성과 동시성이다. 현장성은 모든 민간 예술에 적용되는 특색이기도 한데 작품이 없고 행위만 있는 것을 뜻한다. 탈춤, 인형극. 굿거리들이 특정 무대 없이 생활 장소인 마을에서 제의의 순간에 혹은 생활하는 시간 중에 벌어지는 것에서 입증된다. 이는 공간의 현장성, 시간의 현장성으로 파악된다. 또 관중의 현장성 공연자의 현장성도 존재한다. 관중은 전통 연극 속에서 단순히 구경만 하는 꾼이 아니라 광대나 무당과 더불어 놀이를 하는 것이다. 공연자는 공연자대로 즉석에서 대사를 지어 말한다.
시간과 공간 관중과 공연자, 공연자와 작품 사이에 테가 없는 이 현장성은 「마당」이나 「판」이란 말속에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우리 전통 연극은 사건 하나하나에 중점을 두는 시사성과 시간이 지향하는 목적에 치중하는 극성을 함께 병존시키므로 종합성을 지니고 있다.
현대 예술은 「르네상스」 이후가 「장르」가 분화를 거듭해 요즘은 이 현장성과 종합성을 되찾으려 한다. 전통 연극 속의 놀이는 그 동안 정체돼 온 까닭에 오히려 다행인지 몰라도 이 분화를 겪지 않았다 우리의 놀이 속에 남아 있는 이 종합성과 현장성을 현대 예술의 등장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이제부터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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