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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앞에 죄수 되겠다는 슈미트 서독 수상의 겸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빌리·브란트」 수상이 물러나고 「헬무트·슈미트」가 들어앉자 서독 국민들은 『이제 l백촉짜리 지도자는 다 사라지고 40촉짜리들만 남았다』고 「거물 부재」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서독뿐만이 아니어서 「포드」 「지스카르-데스텡」「미끼」 등도 정도는 다르지만 다 40촉짜리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러나 다른 지도자들이 아직 「40촉짜리」라는 평가절하(?)의 불명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데 대비해 「슈미트」서독 수상만이 유독 「1백50촉짜리」로 껑충 뛰어올라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는 모든 선진국들이 전부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 속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슈미트」가 이끄는 서독만은 지난해 같은 불황에도 서구 제국 중 최하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했으며 「브란트」가 깔아 놓은 잔디 위를 종횡무진으로 누빈 끝에 서독의 국제적인 지위마저 한층 밀어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는 단지 겉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슈미트」가 1백50촉짜리로 평가받는 진짜 이유는 그의 인품과 정책이 급변하는 이 세대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비중 때문이다.
「슈미트」야말로 뽑아 놓고 보니 전전의 땟국을 가장 말끔히 씻은 새 지도자란 것이 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다. 「아데나워」 「에르하르트」 「키징거」 「브란트」 등이 「나치」 독일의 잔영을 지우는데 노력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데 비해 「슈미트」는 처음부터 『오늘의 독일』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문제 접근을 해 왔다.
예컨대 그는 세계적인 난제인 경제 문제에 주력, 국내 경제를 안정시킨 것은 물론, 「이탈리아」에 20억「달러」의 차관을 해 파산 직전의 인접국을 구해 줌으로써 「진정한 우의」에 근거한 지도자란 칭찬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브란트」보다도 더 성실히 「동방 정책」을 추진, 선임자에 대한 의리와 예의를 잊지 않는 「보다 인간적인」면도 보여주었고 「키신저」 「지스카르」 「윌슨」에게 『없으면 죽고 못 살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키신저」는 「슈미트」만 만나면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더 이야기를 나눠야 직성이 풀리고, 「지스카르」는 정기적으로 그를 「엘리제」궁에 초대하지 않으면 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고 엄살을 피울 정도.
「슈미트」는 구주 공동시(EEC)에서도 이제 완전히 『큰형』으로 자리를 굳혔고, 대 산유국 서방측 「카르텔」 형성 작업에서도 미국과 「프랑스」의 이견을 좁히는데 산파역을 하고 있다.
이런 「슈미트」를 두고 일부에서는 「연골 정치인」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슈미트」 자신은 『위엄 있는 지도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국민들 앞에 죄수의 겸허한 입장에서 일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위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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