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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시 「시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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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학 입시의 계절이다. 대학이 뭐길래 거기에 들어가려고 고등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중학교, 중학교에 들어가려고 국민학교, 국민학교에 들어가려고 유치원엘 다녔다. 이 몇 차례의 입시 지옥에서 살아 남은 학생이 며칠 후부터 마지막 지옥문을 뚫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옛날의 과거제도가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다.
대학에 응모하려면 우선 그 자격을 주는 예비 고시부터 거쳐야 한다. 여기서 절반 정도가 추려진다. 그 합격자 수는 대학 정원의 배쯤이 된다. 따라서 고교 졸업생의 4분의 1정도만이 대학에 들어갈 기회를 갖는다. 나머지 4분의 3이 해마다 쌓여 악순환이 계속된다.
인생이란 경쟁의 연속이라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의 대학 교육 문제를 이렇게 편리한 생각으로 처리할 수만은 없다.
경쟁의 뜻이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간다는 게 아니라, 아무 데도 들어갈 곳이 없다는데 있다. 대학의 수용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이 경쟁은 관점을 달리하면 별 뜻이 없는 괴로운 싸움일 뿐이다.
그런데 문교 당국은 대학의 정원을 늘리는데 몹시 인색하다.
시설이니 기준이니 하며 그런대로 이유를 들고 있지만 선뜻 납득이 안 간다. 사학은 물론, 국립의 경우에도 이렇다 할 보조는 없이 간섭만 지나치다.
사실 지금의 정원만 지킨다면 제법 이상적인 교육을 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은 아니다. 또 요즈음 「데모」가 빈발하니 대학생 수가 늘어나면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의 수도 늘려야 할텐데 경찰관을 늘릴 예산이 없어서라면 문교 행정만을 나무랄 수도 없겠지만 어디 그럴리야 있겠는가.
대학은 왜 있는가. 입학하기 위해서인가, 공부하기 위해서인가. 일단 입학만 해 놓으면 4년 동안 똑똑한 책 한권 안 읽어도 졸업은 무난하다. 야구에서 「포·볼」로 진루하듯 거저 먹을 수가 있다. 흔히 일류 대학이란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우수한 학생이 모인 대학이란 뜻에 그친다.
한편 입시에 탈락한 재수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큰 문제가 있다. 낙방에서 오는 실망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며 거기서 반항심이 생겨 끔찍한 탈선이 일어난다. 역대 중국에서 반역을 일으킨 두목은 대개 과거에 낙방한 자였으며, 우리 나라의 홍경래도 그런 경험의 소유자였다는 것도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우리 나라 학부모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빚을 져 가며 가정교사·과외·학관의 뒷바라지를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입시 지옥에 부채질을 한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돈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다 모으면 해마다 대학 몇 개쯤은 세울 수 있지 않을지.
여하튼 제도적인 개선으로 진정한 교육을 위한 대학에 가까워지도록 궁리할 때가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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