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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투쟁의 전기 브레즈네프 와병설|소련 문제 전문가 「빅토르·조르자」의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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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집트」 방문 계획 취소로 표면화된 「브레즈네프」의 와병설과 실각설이 갖가지 「루머」와 추측을 자아내고 있다. 서방 정보 소식통들은 그가 암이 아니면 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일부에서는 그가 권좌를 잃었다는 속단을 하기도 한다. 이 문제에 관해 미국의 소련 문제 전문가인 「빅토르·조르자」의 「칼럼」을 「워싱턴·포스트」지에서 옮겨 싣는다. <편집자 주>
정보 전문가들 사이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던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크렘린」내 지위문제가 그의 와병설과 함께 갑자기 실각설로 번지고 있다. 이럴 때 「브레즈네프」가 공식석상에 몇 번이라도 나타나거나 사냥을 즐기는 건강한 모습의 사진이라도 의도적으로 발표한다면 이 같은 「설」들은 또 다시 잠잠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와병설은 사실인 것 같다.

<미·소 회담 때도 피로 빛>
「브레즈네프」의 권력 약화에 대한 최근의 보도들을 수긍하지 않는 소련 문제 전문가들도 그의 와병설만은 무시하기에는 너무 근거가 뚜렷하기 때문에 인정하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브레즈네프」의 「이집트」 방문 계획 취소는 그의 와병설에 관한 여러 가지 근거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지난번 「블라디보스토크」 미·소 정상 회담에 참석한 그는 비록 회의에는 참석했지만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특히 회담 분위기가 가열되면 될수록 더 그랬다. 이 때 그를 본 미국 측 대표들은 모두 이 광경을 주목했다.
또 「브레즈네프」는 최근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도 피로와 병색이 역력했으며 단지 피로하다는 이유로 몇번이나 예정된 행사 참석을 취소했었다. 이 뿐 아니라 최근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라크」와 「스리랑카」의 의원 사절단을 비롯, 많은 외국 지도자들이 끝내 「브레즈네프」와 면담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지난 11월 「볼셰비키」 혁명 기념 행사 때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자 「크렘린」 당국은 「브레즈네프」가 여러 시간 동안 서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연례 군중 대회를 취소했었다.
이런 모든 사실은 몇몇 분석가들로 하여금 「브레즈네프」의 「이집트」 방문 취소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브레즈네프」의 정치적 취약성을 「모스크바」의 「루머」의 산물로 생각하게끔 하기에 충분하다.

<강경파의 압력 받기도>
그러나 과거에 「크렘린」안에서 「브레즈네프」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을 항상 거부해 온 다른 사람들이 지금 불안스럽게 보다 솔직한 견해로 입장을 바꾸기 시작하고 있다.
관료 정치에 관한 토의에서 그렇듯이 그들은 어떤 사태가 발생할는지를 올바로 추측해 왔다고 말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입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의 변화는 그 자체가 「모스크바」로부터의 「사인」이 점점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모스크바」측은 소련이 「키신저」 미 국무장관에게 유대인 이민에 관한 어떤 보승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는데 이 시기는 「잭슨」 수정안에 대한 소련의 이의를 「워싱턴」에 공식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미 의회가 무역 법을 통과시킨 때와 일치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렇지만 「브레즈네프」가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양보했다고 「모스크바」의 강경파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증거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크렘린」측의 부인은 「워싱턴」에 대해 제기된 것으로 간주될 뿐 아니라 「브레즈네프」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에 대한 국내 비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브레즈네프」측의 방어 행위로서도 간주된다.
「카이로」 방문 취소는 「브레즈네프」가 「카이로」에 긴급 서한을 보낸 뒤에야 취해졌고 그로 인해 「이집트」의 외상과 전쟁 상이 황황히 「모스크바」로 달려갔다.
만약 그 「메시지」 내용이 「브레즈네프」의 병에만 관한 것이었다면 「사다트」「이집트」 대통령은 그의 고위 각료를 파견하지 않고 「이집트」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브레즈네프」의 「메시지」가 명백히 언명한 것은 그의 「카이로」 방문을 위해 애초에 합의되었던 조건이 갑작스럽게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련 신문이 「카이로」 방문을 초점에 맞춘 때 이른 보도는 타결점이 적어도 윤곽 정도만은 정말 합의되었고 또 그 방문이 협상의 성공을 앞으로 이룩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앞으로 합의될 소련의 대「이집트」 무기 공급은 「이집트」가 많은 소련 군사 고문관들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브레즈네프」는 이 조건이 「사다트」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주장한다는 것이 그의 방문 성과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사다트」가 「이집트」에서 추방한 소련 군부는 「브레즈네프」에게 축출 당한 모욕을 씻어주길 원했다. 항상 경계심을 잃지 않고 있는 군인들은 「이집트」에 양도된 무기의 사용을 통제할 지위에 있길 원했다. 소련 군부는 적대 관계에 개입될 경우 그들은 「사다트」에 의한 결정권 행사보다는 그들 자신이 결정권을 내릴 위치에 있길 원하는 것이다.

<유대인 문제서 약세 보여>
「브레즈네프」의 「카이로」 방문 안건이 처음으로 「크렘린」에서 논의되었을 때 「브레즈네프」가 겪었음에 틀림없는 이러한 반대는 분명히 그를 위압했거나 혹은 그 방문은 전혀 발표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외국 원수들과의 회담을 취소하는 횟수가 거듭되는데서 분명해진 「브레즈네프」 건강의 점진적인 악화, 그리고 유대인 자유 출국 문제 처리 과정에서 분명해진 그의 정치적 지위의 약화는 그의 도전자들에게 「카이로」 방문 문제를 재론시키게 하고 「사다트」가 그들이 요구한 조건을 거부했을 때 「카이로」 방문을 취소하게끔 할 수 있게 했다.
양쪽은 모두 체면을 유지하려고 애써 왔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피차간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즉 「카이로」와 「모스크바」는 다같이 양측간의 불화가 공공연히 되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소련 무기가 일부나마 「이집트」에 공여 될 것 같다.
그러나 소련은 「이집트」가 원하는 만큼의 규모나 「이집트」가 요청하는 구체적인 무기를 그대로 주지는 않을 것이다.
「크렘린」 내부의 불화설이나 「브레즈네프」의 「카이로」 방문 연기·유대인 자유 출국에 대한 「브레즈네프」의 방어하는 듯한 부인 등은 이미 몇년 전부터 「크렘린」안에서 주요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져 왔던 권력 투쟁의 최근의 움직임인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요인으로 등장한 것은 「브레즈네프」의 건강 악화다.
「브레즈네프」의 건강 악화는 「크렘린」안의 권력 투쟁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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