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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의 암운은 걷힐 것인가|전문가들이 보는 새해 국내외 경제의 향방|국제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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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3년10월 중동전을 고비로 세계 경제는 혼돈과 침체 속으로 빠져들고 이에 따라 한국 경제도 불황과 물가 광란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혼돈과 침체는 75년에도 계속될 것인가? 75년 세계 경제의 향방과 이것이 한국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지는 비상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75년 세계 경제에 대해선 김만제 한국 개발원 원장과 본사 이규동 논설위원, 국내 경제에 대해선 김종대 대한상의 부회장과 현영진 경제 부장과의 대담을 통해 예진 해 본다. <편집자 주>
▲이규동 논설위원=세계 경제 질서는 73년의 에너지 파동을 고비로 이제 중대한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는 듯 합니다.
평화 시대의 기반이 되어온 IMF·GATT 등 통화 체제·국제 무역이 미국의 지배를 벗어남으로써 구조적인 변질을 겪고 있는 가운데 「아랍」권의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력이 점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계 경제 변화에 대한 종합적인 전망을 김 박사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각국 여건, 협력 체제 파괴>
▲김만제 원장=자원 파동이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OPEC의 연간 외환 수입은 2백억 달러에서 74년에는 석유에서만 6백억 달러를 더 벌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의 외환 고갈과 편중 현상이 심화되었고 세계적인 상품·자원의 품귀에 따른 「인플레」의 누진은 각국의 긴축 강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어 범세계적인 경기 후퇴를 겪고 있는 삼중고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각국의 경제 여건은 60년대 이래의 상호 의존·협력 체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원 파동이 본격화 된 지난 1년의 경험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부각시켰습니다. 하나는 여러 갈래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원유·식량의 부족이 단기적 파동으로가 아니라 장기적 추세로 대두되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또 하나는 현재 대두되고 있는 문제들의 심각성을 모두가 인식하면서도 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이나 방법론의 「컨센서스」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점입니다.
▲이=30년대의 대공황이 재연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 74년의 경험은 각국이 협력에 의해 이를 극복하리라는 전망보다는 30년대처럼 경쟁적 보호주의에 의한 파국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는 징후가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협조 체제의 가능성은 선진 공업국들간에 국한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들은 배출구로서 피해만 전가 당할 우려가 많지요.
▲김=그렇습니다. 에너지 파동의 영향은 개발도상국들에 더욱 심각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 개발 계획 추진을 포기하는 나라도 생길 것입니다. 더우이 선진국의 원조가 실질 가치·절대액 모두 줄어드는 추세에서 외환 사정의 추가적인 악화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보호주의로 파국을 우려>
▲이=세계 경제와의 관련에서 볼 때 미국 경제의 향배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포드」 행정부는 아직 어떻다 할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그것은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겠지요. 에너지 파동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이, 그것이 긴축 강화이든, 「리플레」 정책이든 간에 모두 상당한 국민의 고통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과감한 정책 채택이 주저되고, 이는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의 국제 경제 전망을 어렵게 만드는 많은 불확정 요인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에너지」 파동의 본격적인 여파가 75년에도 상존 할 것이며 「오일달러」의 산유국 유입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7천∼8천억 달러로 예상되는 75년의 세계 무역을 감당해야할 유동성이 산유국으로 집중되고 환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세계 무역은 큰 위기에 봉착할 것입니다.
EEC 쪽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로 비관적입니다. 영국의 평가 절하는 지금 시간 문제이며 「이탈리아」도 외환 조치가 불가피한 상태로 각국이 「인플레」에 따른 사회 불안이 고조되고 실업 사태를 낳고 있어 쉽게 벗어날 길이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요.
미국도 경기 대책으로 「리플레」적 수단에 의존할 경우 세계 「인플레」는 더욱 가속화될 공산이 큽니다. 이처럼 세계에는 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여러 형태의 정치·사회적 불안요인이 만연하고 있어 불행한 사태가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아도 에너지 파동이 2, 3년 안에 쉽게 해결될 전망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30년대 이후 경제 정책 수단은 상당한 개발을 실현했으나 사회적 여건은 판이하게 달라졌지요. 그때는 GNP 신화도, 자원 제약도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인플레」 없는 불황극복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성장의 후퇴·생활 수준의 하락을 용인하지 않음으로써 구조적인「인플레」 체제로 굳어진 느낌입니다.

<구조적인 인플레 체제로>
▲김=원유가 인하나 대체 에너지 개발도 당분간 무망한 것 같습니다.
석유 값은 「배럴」당 7∼8 달러이면 장기적으로 대체 개발이 이루어지는 수준이나 거액의 투자 규모와 장기의 회임 기간에 비추어 최소한 10년 안에 완전한 대체가 이루어 질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이= 에너지 없는 성장의 본질이 회의적인 것이라면 석유 소비 절약도 비관적이지요. 그렇다면 아랍의 카드는 아직도 강하면 단기적으로는 석유 가격 억제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당면한 두 가지 제약 요인, 식량·에너지의 현존 여건은 「성장해야 되는」 자본주의 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함으로써 체제 자체의 구조적 변화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대체 에너지 개발 힘들고>
▲김=일본은 75년 중 3∼5%의 실질 성장을 기대하고 있으나 미국·EEC의 경기 전망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점에 비추어 그만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국제 수지의 벽은 일단 해소되었으므로 경기 회복 여부는 전적으로 인플레의 수습 여부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나는 경기 회복의 전망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더 침체할 소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자본 체제의 경기 변화는 그 규모 자체에 기인한 가속도로 인해 국면의 반전이 어려운 점을 고려할 수 있지요. 또 비록 리플레 대책이 채택되더라도 74년 중의 엄청난 재고 투기 때문에 재고 조정 기간 중에는 리플레 정책 효과도 한계를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국제 경제의 제 여건을 고려할 때 우리의 경제 운용은 보수적으로 다루어져야할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회복에 막연한 기대를 걸기보다는 우리 경제 내부에서 「인플레」·불황 등 당면 과제를 소화할 수 있는 타개책을 마련해야 되겠지요.
▲이=75년의 경제 정책 기본 구상은 약간 시기를 늦추더라도 국제 여건의 변화를 최대한 고려하도록 조급히 서두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악의 경우 선진국의 「제로」 성장까지 가정할 수 있겠지요. 자본 도입 창구도 OPEC 이외에는 일단 어려울 것으로 전제해야할 것입니다.

<대담>
김만제 박사 <한국 개발원 원장>
이규동 씨 <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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