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결 다지는 「제3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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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1월13일 「야세르·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국가원수로서의 모든 예우를 받으면서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사건은 제3세계의 외교적 단결을 과시한 역사적 전기로 기록될 것이다.

<반제·민족주의가 공통점>
이 사건은 1946년 서방측이 다수표의 압력을 동원, 「팔레스타인」분할안을 가결시킴으로써 오늘날 중동문제의 비극의 씨를 뿌렸던 그 결정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다수의 압력이 동원된 결과였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아라파트」에 대한 예우가 제3세계의 「다수의 횡포」에 의한 것이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제3세계 쪽에서는 오히려 이제야 「유엔」이 강대국의 횡포에서 벗어나 공정한 토론장으로 성장했다고 맞섰다.
74년 「유엔」총회에서 제3세계의 단결된 의견이 작용했던 결정은 「아라파트」의 초청 이외에도 남아연방 대표를 그 나라의 흑백차별정책을 이유로 토론장에서 몰아낸 결정, 「이스라엘」의 정치위원회 발언횟수를 1회로 제한한 결정, 「유네스코」지역 「그룹」에서 「이스라엘」대표를 축출한 결정, 「유엔」경제헌장 채택 등이다.
이 모든 결정들은 서방측의 강력한 반발을 묵살하고 채택된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대표는 재정적 지원의 중단을 암시하는 협박연설을 했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영국·서독 대표들도 『다수파가 아량 있고 건설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제시해줘야 될 것』이라는 온건한 반발을 했다.
과거의 다수파가 새로운 다수파의 아량을 호소하는 이 흥미로운 변화는 「유엔」을 구성하는 회원 수의 증가에서 온 필연적인 결과다.
45년 「유엔」이 창설되었을 때 창설「멤버」가 51개국이었던 것이 이제 1백38개국으로 불어났다.
이중 1백개국이 제3세계에 속해있는 나라들이며 그 대부분이 60년대를 전후해서 서구 식민세력으로부터 독립한 「아시아」·「아프리카」국가들이다. 이들은 따라서 반서구적이고 반제국주의·민족주의 등 지극히 감정적인 요인들을 그 공통점으로 하여 국제적 연대의식을 키워왔다.

<아랍 산유국 앞장선 셈>
이 연대의식은 50년대를 통해 「네루」 「나세르」 등 거장들에 의해 추진된 비동맹운동을 통해 현란한 「비전」을 보여주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실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실질적인 단결력을 과시하지는 못하고 좌절되었었다. 그러나 작년의 중동전을 계기로 시작된 석유무기화는 제3세계의 단결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74년의 제3세계의 단결은 정치적으로 「팔레스타인」민족에 민족자결권을 주고 경제적으로는 자원의 공정한 평가를 통해 남북간의 부의 격차를 줄여보려는 노력을 주로 「아랍」산유국 주도로 전개되어왔다.
『실행할 가능성도 없는 명목상의 문서에 불과하다』는 서방측 비난을 받으면서 채택된「유엔」경제헌장은 제3세계가 갖고있는 유일한 힘인 자원을 보호하고 이에 대한 온당한 값을 받아내야겠다는 단호한 결의였다.
2월 「파키스탄」의 「라호르」에서 열린 37개 회교국 정상회담은 ▲「아랍」점령지로부터 「이스라엘」의 철수 ▲성도 「예루살렘」에 대한 「아랍」의 주권회복이 중동분쟁 타결의 절대불변의 전제조건 천명 ▲PLO를 「팔레스타인」인민의 공식대표기구로 승인하는 등의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10월 「라바트」에서 열린 「아랍」정상회담에서는 PLO의 대표권인정과 PLO에 의한 「팔레스타인」국창설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강대국은 소외감 느껴>
이같이 제3세계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그들 자신의 결속과 유대강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중동전 이후 노정된 「아랍」권 내부의 분열과 갈등의 타개·해소에도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단결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가 통일된 국제정치상의 한 단위를 이루는 데는 많은 한계성이 있다.
첫째, 연대의식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에 흘러 실질적인 문제해결보다는 항상 원칙의 확인에서 맴돈다는 점이다.
둘째, 석유 무기화를 통해 빈곤에서 벗어난 소위 「아랍」산유국 중심의 새로운 집단이 1차적으로 자신들의 독자적 이익을 다지는 과정에서 석유를 갖지 못한 나머지 개발도상국들을 궁지에 몰아넣어 제3세계 내부에 새로운 분열요인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세째, 제3세계가 얻은 가장 큰 승리라고 할 「유엔」에서의 다수세력 확립은 그 반작용으로서 강대국의 소외감을 가져와 국제분쟁 개입에 관한 「유엔」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엔」은 제3세계가 주인으로 들어앉은 순간 그 지주가 내려앉은 꼴이 되고 말았다.
네째, 제3세계운동은 이를 주도할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결핍과 이에 따라 공동이념의 정립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제3세계가 서방세계와 같은 강력하고 잘 조직된 국제단위에 대항해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다. <김정식 기자>

<차례>
ⓛ프롤로그
②자원위기의 쇼크
③서구 민주주의의 딜레머
④단결 다지는 「제3세계」
⑤후진국 정치체제의 동요
⑥동서「해빙」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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