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반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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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새 「런던」식료품가게들엔 좀 기이한 신종 빵이 눈에 띈다. 그저 밀가루로 반죽만 해놓았다. 우선 상표가 좋다-. 「테이크·앤드·베이크」(가지고 가서 구워 먹어라)다. 그러니까 빵의 반제품이다. 그런데도 구워놓고 썰어놓고 한 완제품보다도 1, 2전씩이 더 비싸다. 그래도 좋다고 잘들 사간다.
누군지 생각 잘했다. 돈 벌만한 두뇌다, 라는 것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먹혀들어 갈만한 바탕이 눈에 띄진 않으나마 야금야금 자라온 게 「유럽」공업사회들 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한마디로 「깡통문화에의 식상」이라고 해놓자.
서양에선 「밥을 먹는다」는 건 흔히 「깡통이나 포장을 뜯어먹는다」는 것쯤으로 돼왔다. 공장에서 양산되고, 통조림 되고, 냉동되고, 포장되고 한 것들을 뜯어놓거나 기껏 데워놓으면 식탁은 거뜬히 차려졌다는 것이다.
『서양사람은 밥을 먹고사는 게 아니라 깡통을 먹고산다』고 하면 약간 과장된 말인지 모른다. 서양이래서 알뜰살뜰한 마누라들이 어찌 없겠느냐.
그러나 대개의 경우 끼니마다 우리네 뜻으로 「밥상」을 차리는 것은 주부들이기보다는 공장의 직공들이라고 해도 어림없는 얘길 건 없다.
물론 편하다. 설거지까지를 기계가 해주는 판이니까. 주부들은 별로 할 일이 없어졌다. 김장통에 손등이 터지는 우리쪽 아낙네들로서야 『어마나아』하고 부러워 할만한 일인 것인데도 사람이나, 사람이 산다는 것이란 그저 편해놓고만 볼 것만은 아닌 것. 서양 사람들은 이런데 좀 물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밥을 먹을 때의 맛이나 포만감이란 그저 밥그릇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부엌바닥을 디디고 선 주부의 발바닥, 손끝에서 우러나 스미는 무형의 조미에서도 나온다.
서양인도 사람이다. 어찌 국한그릇에서나마 혀를 치는 마누라 맛을 모를 수 없었겠다. 주부측 역시 영감대령이 제 몫이 안 된대서야 흐뭇할 리 없다.
공업문화가 가져온 생활의 기계화·간이화는 주부들을 주방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본래의 역능으로부터 소외시켜오기도 했다. 일장이 있으면 일단은 따른 법인지. 하여튼 누구도 소외를 바라지는 않는다. 여자면 더 그렇다.
그래서 영국 주부들은 반죽만 해놓은 빵을 비싼 돈을 주고 사다 구워먹는다. 돈주고 「고생」하는 격이다. 그러고 보면 한때 「슈퍼마키트」통에 시들시들 자취를 감춰가던 구멍가게들이 다시 흥청 활기를 띠는 듯한 느낌이다. 또 요새 새로 섰다하면 소위 자연식 가게들이다. 예쁘장한 깡통이나 포장식품만 뜯어먹고 있자니까 좀 입맛이 떨어져가는가 보다. 【박중희 주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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