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반문화(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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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겨보면 그럴싸하기도 하다. 이쯤 되면 인간과 「빠때리(배터리)·헨」과 뭐가 그리 다르냐는 거다. 「빠때리·헨」이란 몸뚱어리만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에 잡혀 앉아 꼼짝없이 알만 까다 죽는 양계장의 암탉들이다. 닭도 하나의 목숨이라면 잔혹 치고도 최고다. 그런데 요새 공업사회의 사람들 주택들이 꼭 이따위 양계장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일단의 「런던」시내 고층주택 주민들의 『땅을 밟고 살게 해달라』는 진정소동이 있었다. 그래 「고층주택론」이라는 게 「매스컴」의 떠들썩한 화제거리가 됐고 한때 부러워하기까지 했던 「아파트」란 기실 암탉장 정도였었구나 하는 소리가 나온 것도 그때부터였었다.
주로 사회학자들 입에서 나온 이런 진단이 학자다운 혜안에서 본건지, 또는 약간의 수식적 과장이 섞인 것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요새 흔히 제의되는 주택의 저층화라는 게 실제로 가능한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건 있다. 영국사람들 사이에선, 또 몇몇 호화급의 경우를 빼놓곤 도시 20∼층씩 되는 고층「아파트」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인생 마지막 가는 길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엔 물론 영국대로의 까닭들이 있다. 태반이 국영이고 따라서 값이 싼 이런 고층「아파트」에 산다는 게 대개는 사회밑바닥 사람들인 터라 제 자신을 하급백성 속의 하나로 보길 싫어하는 층으로서야 하늘로 치솟은 이런 「현대」주택들을 꺼린다는 게 무리는 아니다.
더러는 속물성의 탓이기도 한 이런 류의 것을 빼놓고도 그들이 고층·밀집화된 주택을 기피하는 데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들도 있다. 「군중 속의 고독」하면 좀 헐어 떨어진 상투어처럼 됐지만 사실 이런 나무꼭대기 벌집 같은 환경 속에서 칩거하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집단 속에서의 고독이라는 것이다. 사실 수십, 수백 가호가 모여 산다는데도 이웃끼리 낯을 익히고 가다가는 정담을 나눌 기회란 좀처럼 없다는 것이 아까 말한 진정주민들의 한결같은 불만이기도 했다.
이런 서로간의 소외현상이 주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영향은 감수성이 한창 강한 어린이들의 경우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개구장이가 한 동네 개구장이를 모르고 산다. 그래서 개구장이는 외롭다.
인구의 밀집화, 사회의 도시화, 이에 따른 주택의 고층화 등은 모두가 공업화된 사회들에서 먼저 일어나온 현상들이다.
집 한간 없어서 우로를 이불삼아 평생을 지내는 인간들이 세계에 얼마나 많다고, 이런 배부른 소리냐랄 수도 있다. 지금 서구 공업사회들의 인구나 생계원의 구조 등등으로 봐서 개개의 집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게 하기도 손쉬운 일은 아니다.
그야 어떻든, 주택의 소위 탈인간화니 양계장화니 하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고, 그래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짚고 살게 해달라는 게 당국에 진정까지 되는 겔 게고, 그러고 보면 이것도 주택의 고층화가 상징해온 서구생활문명의 체증의 하나래도 괜찮겠는지. 【박중희 주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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