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경제정세-도섭수삼씨 초청강연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본의 경제학자인 「이나바·슈우조」(도섭수삼)씨는 중앙일보사 초청으로 내한, 18일 하오 3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서울 신문회관에서 「세계경제정세」란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 「이나바」씨는 현재 일본원자력위원회 위원이며 일본경제조사회 회장·산업경제신문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또 현실참여학자로서 지전 수상의 소득배증계획 등 여러 정책입안에 깊숙이 참여했다.
「이나바」씨는 한국 체류하는 동안 남덕우 부총리를 비롯한 정부당국자와도 만나 앞으로의 한국경제진로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신문회관 강연회 요지는 다음과 같다.<편집자 주>
내년도 세계경제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불황의 밑바닥에 있는 세계경기가 급속히 부상하리라고는 생각키 어렵다. 또 근본적으로 세계경제는 석유위기와 자원난 이라는 원천적 제약아래 있다. 과거와 같은 값싼 석유「에너지」의 바탕 위에서 대량생산·대량소비의 경제양식을 계속할 수가 없다.
석유를 비롯한 자원파동은 「에너지」절약과 대체 「에너지」의 개발문제를 제기시켰다.「에너지」절약은 바로 경제성장의 감속과 직결된다. 석유에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는 석탄·원자력·천연「개스」 등을 들 수 있는데 부존자원이 풍부한 미국은 여러 선택적인 길이 있지만 일본은 대체가 퍽 한정되어있다.
가장 크게 의존해야 할 원자력도 공해 등 여러 문제 때문에 계획대로 개발을 강행키가 어렵다.
일본은 과거 값싼 자원을 수입, 이를 가공 재수출함으로써 고도성장의 추진력으로 삼아왔다. 지전 수상이 내건 소득배증계획은 당초 너무 야심적이라 하며 비판도 받았으나 실적은 이를 훨씬 초과 달성했다. 이의 원동력은 고도의 수출신장 이었다. 수출신장에 힘입어 무자원 열도인 일본은 구미의 2배가 넘는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고도성장도 이미 한계에 와있다. 우선 값싼 원자재를 들여다가 이를 가공 수출한다는 과거의 경제「패턴」을 계속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미 일본은 임금수준에서 국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의 임금상승율은「유럽」보다 훨씬 앞서고있으며 또 생산성 향상율을 상회하고 있다. 임금상승은 구매력을 증대시켜 경제성장을 자극하는 면도 있지만 생산성을 상회하는 임금상승은 궁극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켜 수출증진을 저해한다. 일본은 자원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관계로 해외원자재 가격의 상승영향을 매우 예민하게 받아 물가상승율은 구미보다 높다. 「인플레」도 수출증진의 큰 저상요인이 된다. 이러한 수출경쟁력의 약화는 일본과 같이 경제에 있어 수출의 비중이 높은 나라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금년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2∼3%선으로 예상된다. 내년도의 경제전망은 전반적인 세계경제 동향에 달려 있겠지만 세계경기의 급상승이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내년도 일본경제도 과거와 같은 호황과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는 세계경제, 특히 미국 일본 경제동향에 크게 좌우된다. 그동안 한국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한국경제의 성장「템포」는 과거 일본이 이룩한 고도성장과 유사하다. 또 수출급증을 고도성장의 추진력으로 삼았던 점도 비슷한 「패턴」이다. 어떻든 한국경제는 일본경제에 크게 영향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진로를 정하는 데는 세계 특히 미·일 경제의 움직임을 잘 살펴 방향타를 잡아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가 근본적으로 석유 등 자원난의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은 한국경제에도 결코 「피안의 불」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한국은 아직 많은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다. 임금수준도 아직 국제경쟁력이 충분히 있고 공해 토지문제 등도 덜 심각하다. 또 한국국민은 퍽 근면하고 의욕적이다. 한국은 80년도에 1백억「달러」수출과 1천「달러」소득을 목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국도 「인플레」는 일본보다 심하며 최근 들어선 수출 및 생산침체와 재고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장기계획을 세우는 데는 국제경쟁여건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도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계속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선 안될 것이다. 일본보다는 아직 훨씬 성장여력이 있으므로 연평균 8%정도의 경제성장이 아마 알맞은 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